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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금성 유적(汪淸 金城遺蹟) | | 이칭별칭=금성 유적(汪淸 金城遺蹟) | ||
|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27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금성 유적(汪淸 金城遺蹟)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중국 |
| 소재지 |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 조선족 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왕칭현(汪淸縣) 동광향(東光鄕) 진청둔(金城屯)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분 |
| 키워드 | 돌널무덤, 류팅둥 문화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오강원 |
설명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 조선족 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왕칭현(汪淸縣) 동광향(東光鄕) 진청둔(金城屯)에 위치한다. 왕칭강(汪淸河) 북쪽 기슭 하안 충적대지의 구릉 말단부 해발 8m에 입지한다. 1979년 지린성고고훈련반(吉林省考古訓練班)이 무덤 7기를 실습 조사하고, 1980년 지린성문물고고연구소(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가 무덤 33기를 정식으로 발굴 조사하였다.
무덤은 산 정상부와 그 아래 능선을 따라 열을 지어 분포하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7기는 돌과 흙을 섞어 쌓은 같은 봉토 아래에 축조되어 있어 분구묘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같은 봉토 아래의 무덤들은 모두 깬돌식(割石式)의 돌널무덤(石棺墓)이다. 보고자는 이 무덤을 토갱봉석묘(土坑封石墓)로 정의하였다. 무덤은 깬돌이나 막돌(塊石)을 사용하여 쌓았는데, 껴묻거리를 위한 공간은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대부분 상부에서 높이 0.2~0.3m의 봉석토(封石土)가 확인된다. 무덤 구덩이는 길이 1.8~3m, 너비 0.8~1.8m, 깊이 0.4~1.2m이다. 매장 방식은 단인장(單人葬)과 합장(合葬)이 있고, 주검은 바로 펴묻기(仰身直肢葬) 한 것과 화장(火葬)한 것이 있다. 이 가운데 12·18·30~32호 무덤에서는 자작나무 껍질로 시신을 감싸서 화장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12·18호는 2인 합장묘이지만, 이 가운데 1명에게서만 화장 흔적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심발형 토기(深鉢形土器), 배(杯), 완(埦) 등의 토기류와 석부(石斧), 석분(石錛), 석착(石鑿), 석창(石槍), 석촉, 석도, 환상 석기(環狀石器), 석서(石鋤) 등의 석기류가 있다. 청동기는 동포(銅泡) 2점이 출토되었다. 이외에 각문골판(刻文骨板), 골추(骨錐), 골관(骨管), 터키석 수식(垂飾), 구슬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토기의 기종 구성과 속성, 석기 조성, 동포의 공반 등을 고려하여 기원전 8~7세기로 편년된다. 유적은 류팅둥 문화(柳庭洞文化) 전기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