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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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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자거좡 유적(唐山 賈各莊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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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탕산 자거좡 유적, 당산 가각장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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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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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27 판


자거좡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탕산 자거좡 유적, 당산 가각장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중국
소재지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탕산시(唐山市) 루베이구(路北區)의 탕산역(唐山驛)에서 동북쪽으로 약 4㎞
관련 정보
성격 고분
키워드 독무덤, 움무덤, 제사용 청동 용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배현준



설명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탕산시(唐山市) 루베이구(路北區)의 탕산역(唐山驛)에서 동북쪽으로 약 4㎞ 떨어져 위치한다. 1951년 농민이 모래를 채취하던 중 동호(銅壺)를 발견하여, 1952년 중국과학원고고연구소(中國科學院考古硏究所)가 조사하였다.

조사 지역은 동·서쪽 구역으로 구분된다. 동쪽 구역에서는 2~3개의 홍갈색 토기 부(釜)를 연결시켜 조성한 전국 시대 독무덤(甕棺墓) 6기가 조사되었다. 서쪽 구역에서는 전국 시대의 움무덤(土壙墓) 22기 등 모두 36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서쪽 구역 전국 시대 무덤에서는 제사용 청동 용기와 토기가 부장된 무덤이 확인되었다. 5·16·18·28호 무덤에서는 정(鼎), 호(壺), 두(豆), 반(盤), 이(匜), 돈(敦)과 같은 제사용 청동 용기가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이른 시기를 대표하는 18호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 정은 중위안 지역에서 춘추 후기(기원전 6~5세기)에 확인되는 것과 같은 형태여서 동일한 시기로 추정된다. 또한 늦은 시기를 대표하는 16호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 정은 베이징 일대에서 전국 전기(기원전 5~4세기)에 확인되는 것과 동일한 시기로 추정된다. 즉, 자거좡 유적의 제사용 청동 용기 부장 무덤의 연대는 춘추 후기~전국 전기인 기원전 6~4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8·15·16·23·30~32·34호 무덤은 제사용 토제 용기 부장 무덤이다. 8·32호 무덤이 가장 이르고, 31호 무덤이 그 다음이며, 23호 무덤이 가장 늦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는 베이징 일대에서 출토된 토제 용기와 비교하여 기원전 5세기 후반~4세기 후반까지로 볼 수 있다.

유적의 춘추 후기와 전국 전기 무덤에서는 연나라 문화의 제사용 청동 용기와 비교적 거칠게 제작된 토기가 부장된 무덤이 공존한다. 이는 탕산 지역에 연문화 계통의 유물이 유입된 결과로 판단된다. 유적의 청동 용기는 산시성 리위춘 유적(李峪村遗址) 출토 청동기와 유사하다. 즉, 유적의 춘추 전국 시대 연나라의 청동기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