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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1월 20일 (화) 13:27 판
| 기본 정보 | |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지역 | 러시아 아무르강 중·하류 일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우릴 섬 유적, 미하이롭카 유적, 코치코밧카 유적, 막심 고르키 유적, 쿠켈레보-벤조바키 유적, 리브노예 오제로 유적, 수히예 프로토키 유적, 부킨스키 클류치-2 유적, 베줌카 유적, 말르이예 시미치 유적 |
| 키워드 | 취락 유적, 어로, 농경, 목축, 철재, 외반 구연호, 주조철부, 대가족 체제, 뼈연장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홍형우 |
설명
1961·1963년 오클라드니코프(Окладников А.П.)와 데레뱐코(Деревянко А.П.)가 아무르(Амур)강 중류의 우릴 섬에 있는 취락 유적을 조사하면서 명명된 문화이다.
우릴 문화는 블라고베셴스크(Благовещенск)에서부터 콤소몰스크 나 아무레(Комсомольск-на-Амуре)까지 아무르강 중류와 하류에 폭넓게 분포한다. 아무르강 유역에는 우릴 섬 유적, 미하이롭카 유적(Памятник Михайловка), 코치코밧카 유적, 막심 고르키 유적(Памятник Максим Горький), 쿠켈레보-벤조바키 유적, 리브노예 오제로 유적(Памятник Рыбное Озеро) 등의 취락 유적이 위치한다. 또한, 부레야(Бурея)강 유역에는 수히예 프로토키 유적, 부킨스키 클류치-2 유적, 베줌카 유적, 말르이예 시미치 유적(Памятник Малые Симичи) 등이 있다.
규모가 큰 취락지는 대부분 강가나 호숫가의 높은 언덕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크게 구덩식(竪穴式)과 지상식으로 나뉜다. 구덩식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이며, 면적은 50㎡에서 200㎡까지 다양하다. 화덕 자리(爐趾)는 대부분 중앙부에 위치하며. 집자리 내에 화덕 자리가 여러 개 있는 것도 발견된다. 넓은 면적, 집자리 내 다수의 화덕 자리, 그리고 집자리 내부의 간벽(間壁)으로 인한 분할 흔적 등은 당시 우릴 사회가 대가족 체제였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간주된다. 이는 집자리가 소형화되는 폴체 문화(Польцевская культура)와 비교된다. 지상식 집자리는 사냥과 어로를 위한 임시 거주지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무덤은 취락 유적 내 3기만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중 금속 유물은 매우 드문 편이다. 청동기는 청동제 칼[우스티-울마(Усть-Ульма)], 손칼(刀子)편, 물갈퀴형 패식(佩飾)(부킨스키 클류치-1) 및 각종 패식, 구슬 등이 있다. 철기는 쇠칼(鐵劍) 편, 굴지구로 보이는 철기 편, 주조 철부(鑄造鐵斧) 등이 있다. 최근 조사된 수히예프로토키 유적에서는 카라수크 문화(Карасукская культура)의 유물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유물과 철기(청동기를 방제한 쇠칼)가 출토되었다. 또한, 부킨스키 클류치-2유적에서는 쇠 찌꺼기(鐵滓)가 확인되는 등 철의 현지생산을 보여주는 유적도 확인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수히예 프로토키 유적은 기원전 9세기 후반~8세기 초, 부킨스키 클류치-2 유적의 철제 유물은 기원전 12~10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금속기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에도 생산 도구는 여전히 뼈연장(骨角器)과 석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뼈연장으로는 뼈 바늘(骨針), 뼈추(骨錘), 뼈화살(骨鏃) 등이 있고, 석기는 잔손질하거나 마연하여 제작한 돌살촉, 돌창(石槍), 돌도끼(石斧), 돌칼(石刀), 돌 바늘(石針), 석제 그물추(漁網錘), 숫돌(砥石), 갈돌(石棒)과 갈판(碾石) 등이 있다. 이외에 홍수옥, 편암, 토제 구슬도 출토되었다.
우릴 문화의 토기의 특징은 붉은 안료를 칠한 토기가 많다는 점이다. 기종은 대용량의 대형 항아리(壺), 외반 구연호(外反口緣壺), 바리(鉢), 접시(杯), 사발(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짧은 목에 입지름과 바닥 지름이 몸통에 비해 매우 작은 대형호가 특징적이다. 대부분 아가리는 외반하며, 표면은 마연(磨硏)하였다. 무늬는 주로 직·곡선문이며, 파상 융기문(波狀隆起文), 다치구(多齒具) 압인문(押引文), 자돌문(刺突文)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격자 두드림무늬(打捺文)와 새끼줄무늬(繩文)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무늬의 모티브는 번개무늬(雷文)가 주목된다. 소성 온도는 대체로 700~800℃이며, 900~1000℃에 달하는 것도 있다. 제작 기법에 따라 전기(기원전 10~8세기)와 후기(기원전 7~5세기)로 나뉜다. 토기의 태토 분석에서 후기의 태토 첨가물이 유기물에서 내화토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였다.
생계 경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로로 파악되는데, 특히 물고기 산란기의 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큰 사슴, 멧돼지, 순록과 같은 사냥도 주요한 생계 수단이었을 것이며, 우릴 문화의 남쪽 지역에서는 부분적으로 농경과 목축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릴 문화는 아무르강 유역에서는 처음으로 철기가 출현하여 초기 철기 시대로 편년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에 따르면 기원전 12~11세기에서 기원전 5~4세기에 해당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릴 문화는 신석기-청동기 문화로 간주되었으나, 1970년대 우릴 섬과 폴체Ⅰ 유적 등이 발굴되면서 우릴 문화와 폴체 문화로 분리되었다. 이후 우릴 문화가 초기 철기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최근에는 철기의 사용과 관련하여, 중국 쑹넌평원(松嫩平原)의 바이진바오 문화(白金宝文化), 시퇀산 문화(西团山文化), 샤자뎬 하층 문화(夏家店下层文化) 등과의 비교·고찰 등 우릴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우릴 문화의 잔존 시기는 샤오싱안령(小兴安岭)을 중심으로 아무르 강 유역의 동쪽과 서쪽 지역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서아무르 지역에서는 기원전 4~2세기, 동아무르 지역에서는 이보다 조금 이른 시기인 기원전 5~4세기까지로 본다. 이후는 각각 탈라칸 문화(Талаканская культура)와 폴체 문화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