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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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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팔달동 유적(大邱 八達洞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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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대구 팔달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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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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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24 판


팔달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대구 팔달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 145 일대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돌 두름식 화덕, 벽 도랑, 도랑, 구멍무늬 토기, 슴베 없는 돌살촉, 역삼동 유형, 가락동 유형, 검단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유병록



설명

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 145 일대에 위치한다. 금호강의 지류인 팔계천(八溪川)이 금호강과 합류되는 지점의 해발 38~50m의 구릉에 입지한다. 유적은 1980년 처음 알려진 이후 여러 차례 조사 보고를 통해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의 유구가 폭넓게 분포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후 아파트 건설에 앞서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발굴 조사하였다. 청동기 시대 장방형 집자리 19기를 비롯해 원삼국 시대 널무덤(木棺墓)움무덤(土壙墓) 102기, 덧널무덤(木槨墓) 1기, 독무덤(甕棺墓) 139기, 삼국 시대 덧널무덤 22기, 돌덧널무덤(石槨墓) 32기 등과 조선시대 널무덤 146기가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구릉 북쪽 사면에 있는 방형 4호를 제외하고, 구릉 정상부에 3기가 밀집하고 나머지 15기는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분포를 통해 3개의 무리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무리는 유적 내 가장 높은 구릉 정상부에 밀집된 3기의 집자리이다. 1호는 길이 16.5m, 복원 너비 4m로 규모가 가장 큰 장방형 집자리로, 화덕 자리가 길이 방향을 따라 2개 확인되었다. 입지나 규모를 통해 일반적인 주거용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2·3호 집자리는 내부에 화덕 자리가 없다는 점에서 1호의 부속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1호의 출토 유물은 토기류보다 석기류가 다수 확인되었다. 수리한 간 돌검 1점 및 미완성의 돌칼(石刀)과 20여 점과 석기를 가공하는데 사용하는 숫돌(砥石)갈판(碾石) 등도 여러 점 출토되었다. 가장 높은 곳에 입지한 1·2호에서만 그물추가 여러 점 출토되어 특징적이다. 이를 통해 1호 집자리는 공동의 작업장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2·3호는 마을안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의 거주지일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 무리는 1호 집자리군에서 약 35m 떨어져 유적 서쪽의 등고선 방향으로 2열 배치된 집자리 9기로, 동시에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나머지 집자리 무리는 유적 동쪽 경사면을 따라 대략 3열로 배치가 다소 불규칙한 6기의 집자리 무리이다. 이 2개의 집자리 무리는 내부에 벽 도랑(壁溝)을 갖추고 있으며, 8기에서는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竪穴式)으로 집자리 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으나, 13·14호는 방형의 돌 두름식(圍石式) 화덕이 확인되었다. 5·13호는 집자리 바깥 위쪽에 도랑(溝)이 돌려져 있고, 13호에서는 벽 도랑이 외부로 길게 이어지게 만들어져 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무늬가 있는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가 대부분이다. 이외에 골아가리(口脣刻目文)흔적만 남은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退化二重口緣短斜線文)가 소량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슴베 없는 돌살촉이 대부분이고, 돌칼, 돌도끼, 돌창(石槍) 등도 출토되었다. 토기류보다 석기류의 출토량이 많은데 특히, 유적 서쪽의 13호는 내부에 채워진 퇴적토 내에서 다량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토기는 대부분이 깨어진 것으로 집자리 폐기 이후에 이곳을 폐기장으로 바꾸어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구멍무늬 바리 토기가 출토된 14호는 2개의 돌 두름식(圍石式) 화덕 자리가 있어 역삼동 유형가락동 유형의 요소를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검단리 유형권의 요소인 벽 도랑과 (추정)외부 돌출구 가 확인되어 여러 문화상이 혼재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집자리이다.

팔달동 유적은 그 입지적 우월성이나 위치상으로 대구 지역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특별한 성격의 마을 유적으로 판단된다. 또한, 토기류보다는 석기류가 많다는 점에서 수렵, 채집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돌도끼 중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보다는 외날 돌도끼(片刃石斧)돌끌(石鑿)이 더 많다는 점에서 당시 일부이지만 화전(火田) 중심의 농사에서 계곡이나 평지로의 농경지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유적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