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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천곡동 유적(蔚山 泉谷洞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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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울산 천곡동 유적, 울산 천곡동 가재골 유적, 울산 천곡동 산173-1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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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2026년 1월 20일 (화) 13:23 판


천곡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울산 천곡동 유적, 울산 천곡동 가재골 유적, 울산 천곡동 산173-1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 418, 418-20, 434-1, 500, 1136, 1154, 달천동 1-5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도랑, 깊은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가락바퀴, 간 돌검, 반달 돌칼, 홈자귀, 간 돌살촉, 조갯날 돌도끼, 돌대팻날, 숫돌, 겹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그물추, 검단리식 토기, 검단리식 집자리, 연암동식 집자리, 도랑무덤, 돌널무덤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수홍



설명

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 418, 418-20, 434-1, 500, 1136, 1154, 달천동 1-5 일원에 위치한다. 상안 초등학교, 아파트 부지 및 진입로 부지 건설로 2003~2009년 7차례 조사되었다. 가재골Ⅰ(천곡동 434-1)에서는 집자리 23기, 구덩이(竪穴) 4기, 도랑(溝) 2기, 둘레 도랑(周溝) 1기, 가재골Ⅱ(달천동 1-5)에서는 집자리 16기, 구덩이 4기, 도랑 3기, 가재골Ⅲ(천곡동 1136)에서는 집자리 41기, 무덤 3기, 구덩이 9기, 도랑 1기, 가재골Ⅳ(천곡동 418-20)에서는 집자리 19기, 구덩이 1기가 조사되었다. 천곡동 유적Ⅰ(천곡동 418) 가지구에서 집자리 6기, 나지구에서 집자리 17기, 구덩이 7기, 도랑 3기, 천곡동 유적Ⅱ(천곡동 500)에서 집자리 29기, 기둥 구멍군(柱穴群) 2기, 도랑 2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동서문물연구원에서 2008~2009년 천곡동 산173-1 유적(천곡동 1154)을 조사하여 집자리 91기, 구덩이 11기, 도랑 3기를 확인하였다. 이 일대에서 총 집자리 242기, 구덩이 35기, 도랑 14기, 무덤 3기, 기둥 구멍군 2기, 둘레 도랑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동천강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여러 갈래의 구릉이 뻗어 내려 경사가 완만하다. 가재골Ⅰ은 가재골Ⅳ의 북쪽에 인접하며, 해발 66.2m의 야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구릉 사면에 해당된다. 가재골Ⅰ의 북쪽에는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서 조사한 천곡동 유적Ⅱ가 인접해 있고, 가재골Ⅳ의 남쪽에는 역시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서 조사한 천곡동 유적 Ⅰ-나지구가 인접해 있다. Ⅰ-나지구에서 남서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는 Ⅰ-가지구가 있다. 가재골Ⅱ는 가재골Ⅲ의 남쪽에 인접해 있으며 가재골Ⅰ·Ⅳ에서 북서쪽으로 약 250m 떨어져 있다. 가재골Ⅱ·Ⅲ은 해발 69.1m의 야산에서 동쪽과 북동쪽으로 뻗은 구릉 사면에 위치한다. 가재골Ⅱ·Ⅲ의 북동쪽 즉 구릉 아래쪽은 동서문물연구원에서 조사한 천곡동 가재골 산173-1 유적이다.

집자리는 대형의 장방형, 세장방형, 중·소형의 방형, 장방형으로 구분된다. 대형 장방형은 나지구 1·3호가 대표적이다. 1·3호는 약 10m 거리에 나란하게 위치하여, 동시기에 축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나지구 3호는 길이 16.64m, 너비 8.74m, 면적 145.4㎡이다. 내부 시설로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저장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竪穴式)으로 중앙부에 2개가 설치되었고, 기둥 구멍은 12주식(柱式)이다. 벽 도랑은 벽을 따라 확인되며, 내부에 벽 기둥 구멍(壁柱穴)이 설치되었다. 벽 기둥 구멍은 벽면 마감재를 설치하기 위한 용도로 판단된다. 저장 구덩이는 북서쪽 모서리와 남서쪽 모서리에서 각각 확인되었다. 나지구 1호는 면적 118.9㎡이며, 내부 시설은 3호 집자리와 유사하다. 2열 12개의 기둥 구멍 외에 중앙부에 중심 기둥 구멍 2개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나지구 1·3호의 출토 유물은 겹아가리,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二重口緣短斜線文),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二重口緣短斜線口脣刻目)가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붉은 간 토기 등의 토기류와 토제 가락바퀴, 간 돌검, 반달 돌칼, 홈자귀(有溝石斧), 간 돌살촉,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숫돌(砥石),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가재골Ⅰ-28호는 길이 9.25m, 너비 5.25m로 대형이다. 내부 시설로는 평지식 화덕 자리 1개와 벽 도랑이 세 벽을 따라 평면 ‘п’자 모양으로 설치되었다. 내부에서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가 출토되었는데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口脣刻目孔列文土器)구멍무늬 토기(孔列文土器)가 공반되었다. 단면 반원형의 가락바퀴, 그물추도 함께 출토되었다. 가재골Ⅲ-39호 집자리는 한쪽 짧은 벽이 유실되었으며, 길이 9.9m, 너비 4.96m로 대형이다. 구덩식 화덕 자리 2개와 ‘□’자 모양 벽 도랑이 설치되었으며 한쪽 모서리에는 저장 구덩이가 설치되었다. 유물은 겹아가리 토기가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와 함께 출토되었다.

세장방형 집자리는 천곡동Ⅱ 19호, 천곡동 산173-1 유적 13·20·39·71호 집자리가 대표적이다. 규모는 대형이며, 화덕 자리가 두 개 이상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산173-1 유적 13호처럼 화덕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71호는 중앙에 화덕 자리 1개와 비슷한 규모의 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었다. 기둥 구멍의 배치는 8~12주식이다. 출토 유물은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골아가리 등 두 가지 이상의 무늬가 복합되어 시문된 깊은 바리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 외에 가재골Ⅱ-13·15호, 가재골Ⅲ-28호, 가재골Ⅳ-7호 집자리는 세장방형이며, 방형·장방형보다 이른 시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가재골Ⅲ-5호는 길이 8.96m, 너비 5.02m로 대형급이며 원형, 방형 화덕 자리 각각 1개씩이 설치되었다. 내부에는 낟알무늬(突瘤文)가 새겨진 검단리식 토기가 출토되어 송국리·검단리 단계의 대형 집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이 지역의 유력 개인의 집자리로 추정된다. 중·소형의 방형, 장방형 집자리는 대부분 1개의 화덕 자리, 4개 혹은 6개의 기둥 구멍, 벽 도랑, 배수구가 설치된 전형적인 검단리식 집자리이다. 대부분 중·소형이다. 천곡동 산 173-1 유적 9·10호 집자리와 같이 장방형에 2개의 화덕 자리가 설치된 사례도 있다. 나지구 7호 집자리의 배수구에는 벽면에서 목탄이 확인되었는데 나무 판자를 이용해 배수구 벽면을 마감한 것을 알 수 있다. 유물은 세장방형 집자리에서 출토된 깊은 바리와 같이 복합 무늬가 확인되는 것과 단독 무늬 혹은 무늬 없는 깊은 바리 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후자는 검단리식 토기라고 하는 낟알무늬가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가 출토된다. 가재골Ⅰ-25호는 집자리 외곽에 반원형의 둘레 도랑(周溝)이 굴착되어 있다. 연암동식 집자리의 둘레 도랑으로,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천곡동Ⅰ-가지구 5호, Ⅰ-나지구 6·10호, 천곡동Ⅱ-2·5·12·20·25호, 산173-1 4·27·29·30·33·36·42·43호 등 집자리 내에 깬돌(割石)이 쌓여 있는 사례가 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의례 행위의 결과로 보는 견해와 무덤으로 전용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방형·장방형 집자리는 대부분 중·소형이다. 내부 시설은 1개의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 배수구가 설치된 검단리식 집자리이다. 기둥의 배치는 방형인 경우 4주식, 장방형은 6주식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8주식이다.

무덤은 가재골Ⅲ에서 도랑무덤(周溝墓) 2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가 조사되었다. 1호 도랑무덤은 한쪽면이 유실되었는데 둘레 도랑은 길이 10.48m, 너비 9.66m, 도랑의 너비는 1.22~1.6m, 깊이 0.4m이다. 도랑의 내부에는 장방형의 매장 주체부가 도랑과 나란하게 설치되었다. 내부에 아무런 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움무덤(土壙墓)으로 추정된다. 움무덤은 길이 1.86m, 너비 0.94m, 깊이 0.26m이다. 2호 도랑무덤은 도랑의 일부만 ‘ㄱ’자 모양으로 남아있다. 돌널무덤 1기는 바닥에 주검 받침돌(屍床石)을 깔고 벽면에 깬돌을 쌓아 축조하였다. 규모는 길이 1.72m, 폭 0.94m, 깊이 0.38m이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둘레 도랑 1기는 가재골Ⅰ에서 조사되었다. 연암동식 집자리의 둘레 도랑과 동일한 형태인데 내부에 집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의례 시설이라는 견해와 도랑무덤이라는 견해가 있다.

유적의 시기는 대형의 장방형·세장방형 집자리, 복합 무늬가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는 중·소형의 방형·장방형 집자리는 흔암리식 토기 단계에 해당된다. 검단리식 토기가 출토되는 중·소형의 방형·장방형 집자리는 송국리·검단리 단계에 해당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천곡동Ⅰ-가지구 1호 292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15년), 5호 3100±55 BP(보정 연대 기원전 1330년), 6호 282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70년), 천곡동Ⅰ-나지구 5호 26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10년), 천곡동Ⅱ 유적 1호 292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15년), 25호 259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0년), 천곡동 산173-1 유적 12호 2725±25 BP(보정 연대 기원전 915~815년), 64호 2845±25 BP(보정 연대 기원전 1088~920년) 등의 값이 확인되었다. 또, 가재골Ⅱ-13호 집자리는 288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30~990년), 16호 810±20 BP(보정 연대 기원후 1205~1270년), 3호 구덩이 259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810~765년)이다. 가재골Ⅳ-1호 집자리 270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1~812년), 2호 281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24~906년), 4호 284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56~921년) 등으로 확인되었다.

집자리 바닥에서 채취한 탄화 종실을 분석한 결과, 벼·기장·조·보리류·콩류·산딸기속 등이 검출되어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유추할 수 있었다. 가재골 유적을 통해 이 일대에 대규모 취락이 존재했었고,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생활의 터전으로 이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3년 2월 27일~2003년 12월 9일 울산 천곡동유적(가 지구) 2005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발굴조사 2003년 2월 27일~2003년 12월 9일 울산 천곡동유적(나 지구) 2005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발굴조사 2005년 4월 7일~2005년 10월 31일 울산 천곡동유적 II 2006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발굴조사 2004년 6월 1일~2005년 2월 28일 울산천곡동가재골유적 I 2007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5년 5월 30일~2006년 1월 4일 울산천곡동가재골유적 II 2008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6년 11월 8일~2007년 5월 1일 울산천곡동가재골유적 III 2009 울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07년 11월 1일~2008년 1월 17일 울산천곡동가재골유적 IV 2010 울산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