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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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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장지동 유적(廣州 墻枝洞遺蹟)
| 한글표제어=장지동 유적
| 이칭별칭=광주 장지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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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2026년 1월 20일 (화) 13:22 판


장지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광주 장지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장지동 190-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송국리식 집자리, 팽이 토기, 바닥 구멍 토기, 바리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강병학



설명

경기도 광주시 장지동 190-1 일원에 위치한다. 2006~2007년 성남~장호원 간 도로 건설 공사의 일환으로 발굴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 8기와 원삼국~삼국(백제)시대의 집자리 16기, 도랑 2기, 구덩이 43기 등 총 69기가 조사되었다. 유적은 중대천과 직리천이 만나는 평탄한 충적대지상에 조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400m 정도에서 경안천이 북류하고 북쪽으로 마주하는 구릉 정상부에 역동 유적이 자리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파괴가 심하여 정확한 형태 파악이 어렵지만 잔존 상태로 보아 세장방형(1호), 장방형(2·3·5·6·8호), 타원형(4호)으로 구분된다. 1호 집자리는 길이 15.2m, 너비 2.4m이며, 내부 시설은 벽 도랑(壁溝)과 기둥 구멍이 있다. 2~8호 집자리는 파괴가 심하여 정확한 구조 파악이 어렵다. 다만, 4호는 송국리식 집자리의 요소인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구멍이 확인되며, 6호는 구덩식 화덕 자리(竪穴式爐址)가, 그리고 8호는 돌 깐 화덕 자리(敷石式爐址)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1호에서 돌끌(石鑿), 숫돌(砥石), 가락바퀴가 출토되었으며, 6호에서 바닥 구멍 토기(底部透孔土器) 편과 골아가리(口脣刻目文)가 시문된 바리 토기(鉢形土器)가 출토되었다. 주목할 것은 2호 집자리에서 팽이 토기(角形土器)가 출토되어 연천 삼거리 9호 집자리와 황주 고연리 1호 집자리, 화천 용암리 52호 집자리의 출토품과 비교된다는 점이다.

방사성 탄소 연대는 3호 253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1~550년), 4호 251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80~543년), 8호 254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7~560년)로 측정되었다. 2호 집자리를 제외하고 집자리의 평면 형태, 출토 유물, 연대 측정 결과를 볼 때 대부분 송국리식 집자리와 병행 단계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