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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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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장리 고인돌군[平壤 場里支石墓群]
| 한글표제어=장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평양 장리 고인돌군, 평양 장리 지석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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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2026년 1월 20일 (화) 13:22 판


장리 고인돌군
기본 정보
동의어 평양 장리 고인돌군, 평양 장리 지석묘군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평양직할시 상원군 장리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오덕형 고인돌, 청동 장신구, 청동 방울, 청동 교예 장식, 청동 끌, 별도끼, 간 돌살촉, 미송리식 토기, 팽이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평양직할시 상원군 장리에 위치한다. 장리는 군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16.5㎞ 거리에 있고 주위에 나지막한 산들이 둘러져 있는 충적 평야 지대이며, 고인돌 5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장리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800m 떨어진 장리천 좌안 평지에 있는 지석동 마을에는 고인돌 10여 기가 자리하고 있고 장리 고인돌군은 ‘보존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보존 유적 북쪽에 있는 오덕형 고인돌 2기를 발굴 조사하여 청동 장신구(靑銅裝身具)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나왔다.

1호 고인돌은 판돌(板石)을 세워 받침돌(支石)과 막음돌(閉塞石)을 짜놓아 무덤방(墓室)은 ‘ᄑ’자 모양 평면 구조를 이루며, 무덤방 둘레에 돌과 흙으로 쌓아 묘역(墓域)을 만들었다. 뚜껑돌(上石)은 길이 6.3m, 너비 4.05m로 상당히 큰 것이다. 무덤방 동북쪽에는 청동 방울(銅鐸) 2점, 청동 교예 장식 1점, 청동 끌(銅鑿) 1점 등이 출토되고 서남쪽 부분에서 별도끼(星形石斧), 간 돌살촉, 미송리식 토기 편이 나왔다. 청동 교예 장식은 높이 4.8㎝의 작은 것이나 독특한 새김 수법과 세공 기술을 보여준다. 2호 고인돌은 덮개돌이 깨져 없어졌으나 받침돌과 막음돌은 잘 남아 있고 무덤방 중심부에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받침돌은 동쪽의 것이 길이 6.1m, 너비 2.4m, 두께 0.5m, 서쪽의 것이 길이 6.1m, 너비 1.3m, 두께 0.55m로 덮개돌은 최대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 칸막이에서 돌도끼, 가락바퀴, 반달 돌칼, 팽이 토기(角形土器), 남쪽 칸에서 별도끼와 간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