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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22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경주 인동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인동리 503-1, 671-1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민무늬 토기, 바리 토기, 통슴베 돌살촉, 숫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도현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인동리 503-1, 671-1 일원에 위치한다. 물류창고 조성에 앞서 2002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여(인동리 503-1) 집자리 6기를 확인하였고, 이후 단독주택 건립에 앞서 2009년 성림문화재연구원(인동리 671-1)이 조사하여 집자리 3기, 구덩이 1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형산강의 하류에 속하는 대미산의 산계를 중심으로 확인되었으며, 두 유적은 1.2㎞ 거리에 위치한다.
인동리 503-1 유적의 집자리는 해발 30m에 위치하며, 능선을 따라 일렬로 배치되었다. 1~3호 집자리는 후대 교란으로 일부가 파괴되었다. 집자리는 방형이며, 길이 2.52~3.68m, 너비 2.52~3.06m이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정형성이 없고, 화덕 자리는 원형, 타원형으로 1개씩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집자리의 벽면에 접하여 확인되었다. 5·6호 벽 도랑 내부에서는 판재(板材) 형태의 목탄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바닥면은 맨땅에 점토 다짐 처리하였다. 유물은 대부분 민무늬 토기 바닥 편등이다. 5호에서는 붉은 간 토기와 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5호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530±40 BP, 2760±40 BP로 기원전 880~595년으로 확인되었다. 보고자는 집자리는 규모가 크고, 화덕 자리와 그 주변이 불에 맞지 않았다는 점 등을 통해 단기간 사용하였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인접한 인동리 고인돌군의 축조 주체와 관련 있는 집자리로 추정하였다.
인동리 671-1 유적의 집자리는 대부분 후대 훼손으로 일부가 훼손되었다. 장방형으로, 2호는 길이 6.6m, 너비 2.35m, 깊이 0.22m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은 2호에서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고, 1·2호에서는 벽 도랑이 둘러진 형태로 확인되었다. 바닥은 대부분 맨땅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2호는 불 다짐 처리하였다. 출토 유물은 2호에서 숫돌(砥石), 3호에서 바리 토기(鉢形土器)가 확인되었다. 구덩이는 3호 집자리에서 남서쪽으로 5m 떨어져 위치한다. 내부에서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와 민무늬 토기 바닥 편이 확인되었다.
인동리 유적은 해안과 내륙권의 접점에 위치하여, 동·남해안 지역 청동기 시대의 수계를 중심으로 확인되는 취락 연구에 중요 자료가 된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04년 | 경주 인동리 유적 | 2004 | 중앙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6년 | 경주 인동리 공장이전부지내 경주 인동리유적 | 2006 | 중앙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8년 06월 16일~2008년 07월 25일 | 경주 인동리 671-1번지 내 유적 | 2010 | 신라문화유산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