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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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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연암동 유적(蔚山 蓮岩洞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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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울산 연암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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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연암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울산 연암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 1004-1, 1128, 115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둘레 도랑, 도랑, 구덩이, 연암동식 집자리, 검단리식 집자리, 검단리식 토기, 깊은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그물추, 간 돌검,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 간 돌살촉, 갈판, 가락바퀴, 연암동식 도랑, 분구묘, 주구묘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수홍



설명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 1004-1, 1128, 1153 일원에 위치한다. 울산 북구 청사 신축으로 부경대학교박물관이 1999년 조사하여(연암동 1004-1), 집자리 1기, 둘레 도랑(周溝) 3기, 도랑(溝) 4기, 구덩이 4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무룡 고등학교 건립으로 1999~2000년 울산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하여(연암동 1153) 집자리 9기, 연암중학교 건립으로 2003년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가 조사하여(연암동 1128) 집자리 9기, 도랑 6기를 조사하였다. 유적은 300m 거리에 분포한다. 유적은 무룡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부분의 완만한 평탄면에 입지하며, 서쪽으로 약 1㎞ 떨어져 동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 태화강에 합류한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이며, 총 16기 중 8기가 집자리 외곽에 타원형 또는 원형의 둘레 도랑이 설치되었다. 연암동 유적에서 이런 형태의 집자리가 처음 조사되어 연암동식 집자리라고 한다. 이후 동천 주변에서 같은 형식의 집자리가 다수 조사되었다. 연암동식 집자리의 특징은 첫째, 둘레 도랑은 집자리에서 약 2~3m 떨어져 집자리의 형태를 따라 돌려져 있다. 4주식(柱式) 방형 집자리의 외곽 둘레 도랑은 원형에 가깝고, 6·8주식의 장방형 집자리의 외곽 둘레 도랑은 타원형에 가깝다. 둘레 도랑의 너비는 0.7~0.8m, 깊이는 0.3~0.4m이다. 둘째, 집자리의 배수구가 외곽 둘레 도랑과 연결된다. 셋째, 집자리의 바닥보다 외곽 둘레 도랑의 깊이가 더 깊다. 이러한 특징은 수해 예방 기능, 집자리와 외곽 둘레 도랑 사이에 주제(周堤)가 있어 주제 외곽에서 침수를 방지하기 위한 시설이라는 견해, 개별 주거의 점유 공간에 대한 표식으로서의 기능이라는 견해가 있다. 최근에는 집자리를 폐기한 후 무덤으로 전용되고, 이 외곽 둘레 도랑은 무덤의 범위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즉 집 축조 때 동시에 외곽 둘레 도랑이 설치된 것이 아니라 집이 무덤으로 전용될 때 축조되었다는 것이다. 외곽 둘레 도랑 내부의 집자리에는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이 설치되었고 한쪽 모서리에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연암동 유적에서 외곽 둘레 도랑이 없는 집자리와 동일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울산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집자리와 동일하며 검단리식 집자리로 불린다.

출토 유물은 검단리식 토기낟알무늬가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구멍무늬(孔列文), 골아가리 무늬(口脣刻目文竪穴)가 새겨진 깊은 바리 토기, 울산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는 손잡이 달린 깊은 바리 토기(把手附深鉢形土器), 붉은 간 토기 등의 토기류와 그물추 등의 토제품, 간 돌검, 반달 돌칼,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간 돌살촉, 선형 석기(船形石器)로 불리는 간 돌살촉 미완성품, 갈판(碾石),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내부에 집자리가 없는 둘레 도랑도 7기가 조사되었다. 울산대학교박물관 조사 구역의 도랑 2·15호도 둘레 도랑일 가능성이 있어 총 9기일 수 있다. 연암동식 집자리의 특징 중 외곽 둘레 도랑의 바닥이 집자리의 바닥보다 깊은 것을 감안한다면 삭평되어 집자리가 유실되고 둘레 도랑만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기둥 구멍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부에 집자리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부경대학교박물관 조사 구역 내 2·5호 둘레 도랑 내부에는 기둥 구멍이 있지만 2호 둘레 도랑 내부에 있는 기둥 구멍은 정연하지 않고, 5호 둘레 도랑 내부에 있는 기둥 구멍은 6주식이지만 위치로 볼 때 집자리와 둘레 도랑이 동시에 존재하기 어렵다. 둘레 도랑만 설치된 것 역시 연암동 유적에서 최초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연암동식 도랑이라 한다. 연암동식 도랑 역시 최근 동천강 주변에서 많이 확인되고 있다. 이 둘레 도랑의 성격에 대해서는 의례 시설이라는 견해와 내부에 무덤이 삭평되거나 분구묘 등 지상에 무덤이 있었던 도랑무덤(周溝墓)이라는 견해가 있다.

유적의 시기는 집자리의 형태, 출토된 유물 등을 통해 송국리·검단리 단계로 판단된다.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외곽에 둘레 도랑이 설치된 집자리가 조사되어 ‘연암동식 집자리’라 불리게 되었다. 이에 대한 조사와 그 성격에 대한 연구를 통해 최근에는 가옥장(家屋葬)이라는 무덤의 영역으로 연구의 범위가 확대되기도 하였다. 연암동 유적을 통해 청동기 시대 마을의 모습에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중요한 유적이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99년 9월 25일~1999년 12월 3일 울산 연암동 유적 2001 울산대학교 박물관
발굴조사 2003년 2월 27일~2003년 10월 31일 울산 북구 연암동 유적 2005 울산발전연구원
발굴조사 1999년 9월 29일~1999년 12월 6일 울산 연암동 유적 2006 부경대학교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