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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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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연산동 유적(光州 蓮山洞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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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광주 연산동 유적, 광주 금곡 유적, 광주 산정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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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시대=청동기 시대

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연산동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광주 연산동 유적, 광주 금곡 유적, 광주 산정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연산동 산14-5(금곡A)·746-41(금곡B)·산85-26(산정A)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구덩이, 송국리 문화, 송국리식 집자리,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수민



설명

광주광역시 광산구 연산동 산14-5(금곡A)·746-41(금곡B)·산85-26(산정A) 일원에 위치한다. 국지도 49호선 도로 개설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2006~2007년 조사되었다. 유적 주변으로는 30~50m정도의 구릉이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과 동쪽으로는 충적지가 펼쳐져 있다. 유적은 발굴 지점에 따라 금곡A, 금곡B, 산정A로 구분되는데 각 유적간 거리는 800m, 200m 정도이다. 청동기 시대 유구는 집자리 32기, 구덩이 18기가 확인되었다.

금곡A 유적에서는 집자리 7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4기만 형태를 파악할 수 있고 나머지는 심하게 파괴되었다. 2·4·5호는 모두 평면 방형으로,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길이 1.2~3.8m, 너비 0.7~3.2m, 깊이 0.1~0.3m 정도이다. 7호는 평면 원형이며 다른 집자리들과 60m 정도 떨어져 있고, 바닥 중앙에서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크기는 지름 3.4m, 깊이 0.2m이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망치돌, 돌살촉(石鏃), 홈돌(凹石), 용도 미상의 석기 등이 있다.

금곡B 유적에서는 집자리 2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모두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 집자리로 비교적 형태가 온전한 5호는 지름 3.64m, 깊이 0.16m 정도이다. 타원형 구덩이 양 끝에는 기둥 구멍이있다. 6호는 잔존 지름 5.78m, 너비 0.8m, 깊이 0.39m 정도이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산정A 유적에서는 집자리 23기와 구덩이 18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해발 45m의 구릉 사면부에서 확인되며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인데, 대부분 원형이다. 원형 집자리는 지름 2.4~5.5m, 깊이 0.2~0.8m 정도이고, 방형 집자리는 파괴가 심해서 정확한 크기를 파악하기 어렵다. 집자리는 크게 두 군집을 이루고 있지만 모두 원형과 방형 집자리가 섞여있다. 집자리들은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송국리식이며 일부는 타원형 구덩이와 벽 도랑(壁溝)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2호와 23호 집자리의 타원형 구덩이 주변에는 기둥 구멍(柱孔)이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 방형이다. 바리 토기(鉢形土器),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민무늬 토기 편, 슴베 간 돌살촉(有頸式磨硏石鏃), 삼각 돌칼, 갈돌(碾石), 미완성 석기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집자리와 혼재되어 있다. 평면 형태는 원형, 방형, 부정형으로 다양하며, 내부에서 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6·8·9호 구덩이는 평면 방형인데, 민무늬 토기 편, 갈돌, 용도 불명의 석기가 출토되어 청동기 시대 구덩이로 추정된다. 구덩이는 6호 집자리의 남쪽에 있는데, 중복 관계로 보아 집자리와 동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금곡A-2호 집자리 293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50년), 산정A-18호 집자리는 247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590년), 산정A-20호 집자리는 253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660년)로 나타났다.

연산동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들은 모두 송국리식인 것으로 보아,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며, 산정A 유적에서는 다수의 집자리들과 구덩이들이 함께 조사되어 송국리 문화 단계의 거점 취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