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1842: 두 판 사이의 차이
보이기
dkamaster 600-1842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dkamaster 600-1842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쌍운리 고인돌군 | | 한글표제어=쌍운리 고인돌군 | ||
| 이칭별칭=숙천 쌍운리 고인돌군, 숙천 쌍운리 지석묘군 | | 이칭별칭=숙천 쌍운리 고인돌군, 숙천 쌍운리 지석묘군 | ||
|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숙천 쌍운리 고인돌군, 숙천 쌍운리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평안남도 숙천군 쌍운리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덮개식 고인돌, 묘역 시설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평안남도 숙천군 쌍운리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쌍운리의 태봉산 기슭과 록수산 마루에 17기 이상이 분포한다.
록수산 구릉의 1호 고인돌은 0.4m 높이의 흙무지 위에 놓여 있다. 덮개돌(上石)은 길이 2.9m, 너비 2.3m, 두께 0.3m이며, 덮개돌 아래에 납작한 깬돌(割石)을 쌓아서 돌널(石棺)을 만든 덮개식(蓋石式, 默房型)이다. 3호의 덮개돌은 길이 3m, 너비 2.3m, 두께 0.4m이며, 하부 구조는 거의 다 파괴되어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으나, 남아 있는 석재들의 양상을 보아 3벽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쌓고, 남쪽벽은 문돌을 세워 축조하였다. 돌널은 길이 1.5m, 너비 0.7m, 깊이 0.6m이며, 돌널 주위에는 묘역 시설(墓域施設)이 있었다. 출토 유물은 확인할 수 없다.
쌍운리 고인돌은 덮개돌의 크기는 작은 편이며, 무덤방(墓室)의 높이가 낮은 덮개식 고인돌이다. 이 외에도 숙천군 일대는 숙천읍 서쪽 구룡강 기슭의 너른 벌판을 지나 검산리, 운정리, 평산리, 송덕리 일대의 높이 50~80m 능선들 위에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과 5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