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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경주 신평리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 553-2, 1048-4, 1112-2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고인돌, 집자리, 화덕 자리, 부석, 경주 신평리 고인돌군Ⅱ, 경주 신평리 가랑골, 경주 신평리 신평들 유적, 도랑, 기둥 건물터, 구덩이, 기둥 구멍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윤형규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 553-2, 1048-4, 1112-2 일원에 위치한다. 경부 고속 도로 언양-영천 간 확장 공사에 앞서 2012~2018년 34개의 유적을 조사하였고, 그 중 신평리 유적은 신평리 고인돌군Ⅱ(553-3), 신평리 가랑골 유적(1048-4), 신평리 신평들 유적(1112-2)에 해당한다. 유적은 반경 450m 내에 위치한다.
신평리 고인돌군Ⅱ에서는 고인돌 2기, 부석(敷石) 1기, 화덕 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신평들 유적에서는 집자리 5기, 도랑(溝) 7기, 기둥 건물터(高床式建物址) 1기, 구덩이 6기, 기둥 구멍 (柱穴)이 조사되었고, 가랑골 유적에서는 집자리 3기가 조사되었다. 유적은 오봉산(해발 685m)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와 형산강 지류인 대천의 범람으로 발달한 넓은 충적 대지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후대 경작으로 인해 파괴가 심하다. 원래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는 신평들 Ⅲ-1호는 길이 11.04m, 너비5m이며 바닥을 불로 다진 흔적이 일부 확인되며, 벽면을 따라 도랑(壁溝)을 설치하였다. 출토 유물은 골아가리 짧은 빗금무늬(口脣刻目短斜線文), 골아가리(口脣刻目)를 새긴 겹아가리(二重口緣) 토기, 구멍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가락바퀴, 양날 돌도끼(兩刃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신평리 고인돌군으로 불리는 4기 중 2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원래 자리에서 이탈하여 덮개돌(上石)만 남아 있었다.
조사정보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 발굴조사 | 2012년~2018년 | 고속국도 제1호선 언양~영천 확장 공사(제5·6공구)구간 내 영천 반정리 부흥·영천 고지리 팔암·경주 도계리 지석묘군Ⅱ 외 16개소 유적-신평리 지석묘군Ⅱ, 신평리가랑골 유적, 신평리 신평들 유적 | 2018 | 삼한문화재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