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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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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신천동 815-7 유적(蔚山 新泉洞815-7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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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울산 신천동 815-7 유적, 울산 신천동 53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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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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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신천동 815-7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울산 신천동 815-7 유적, 울산 신천동 53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북구 신천동 815-7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검단리식 집자리, 연암동식 집자리, 깊은 바리 토기, 붉은 간 토기, 조갯날 돌도끼, 돌대팻날, 간 돌살촉, 갈돌, 갈판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수홍



설명

울산광역시 북구 신천동 815-7 일원에 위치한다. 신천 지구 도시 개발 사업에 앞서 2013년 조사하여, 집자리 15기, 둘레 도랑(周溝) 1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무룡산(해발 452m)과 동대산(해발 444m)에서 서쪽으로 뻗은 구릉의 평탄면에 입지한다.

집자리의 형태는 방형, 장방형이다. 내부 시설은 1개의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壁溝) 등이 설치된 전형적인 검단리식 집자리이다. 화덕 자리는 대부분 바닥을 얕게 굴착한 구덩식이며 기둥은 4·6주식(柱式)이다. 집자리의 아래쪽 모서리에는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4호의 외곽에는 지름 14.5m의 둘레 도랑이 설치된 연암동식 집자리이다. 최근 집자리가 폐기된 이후 무덤으로 사용되었고, 둘레 도랑은 무덤의 범위를 구획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출토 유물은 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붉은 간 토기 등의 토기류 23점과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4점,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4점, 간 돌살촉 2점, 갈돌(碾石棒) 1점, 갈판(碾石) 1점 등이 출토되었다.

둘레 도랑 1기는 4호 집자리의 외곽에 설치된 둘레 도랑과 동일한 형태와 규모이다. 내부에서 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둘레 도랑을 ‘연암동식 둘레 도랑’이라고 하며 의례 시설이라는 견해와 둘레 도랑을 돌린 무덤이라는 견해가 있다.

유적의 시기는 집자리의 구조와 출토 유물을 통해 송국리·검단리 단계로 판단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호 264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900~770년), 6호 280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50~840년), 9호 284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30~900년)로 확인되었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시굴조사 2012년 2월 9일~2012년 3월 26일 울산 신천동 53번지 유적 2015 경상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2013년 7월 10일~2013년 9월 9일 울산 신천동 53번지 유적 2015 경상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