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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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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신정리 유적(鎭川 新井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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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진천 신정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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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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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신정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진천 신정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568-16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가락동 유형, 움무덤, 구덩이, 제철로, 돌 두름식 화덕 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박주영



설명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568-16 일원에 위치한다. 2016년 주택 단지 건립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유적은 백곡천 남쪽 산지의 가지 능선 서사면으로 해발 약 70~81m에 해당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 1기 외 삼국 시대 집자리 15기와 제철로(製鐵爐) 1기, 조선 시대 움무덤(土壙墓) 45기, 미상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정상부에 능선 진행 방향과 동일하고, 동 편과 북편 일부는 다른 유구와의 중복으로 파괴되었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으로 잔존 규모는 길이 13.56m, 너비 3.1m, 깊이 0.22m 정도이다. 내부 시설은 중심 축선을 따라 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 3기가 1.7~1.85m 간격을 두었으며, 주춧돌(礎盤)은 긴 벽을 따라 안쪽으로 0.5m 정도 들여 1.3~1.5m 간격으로 9기가 일렬로 남아 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과 조갯날돌도끼(蛤刃石斧) 편,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집자리의 형태나 입지로 미루어 가락동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연대는 중심 지역인 대전-청주에서 북부 지역으로 확산·전개되며 규모가 대형화되는 시기로 판단된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16년 05월 30일~2016년 07월 08일 진천 신정리 568-16번지 유적 2018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