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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20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영양 신원리 유적, 영양 신원리 돌무지돌널무덤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 산18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검은 간 토기 항아리, 돌무지돌널무덤, 간 돌살촉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도헌 |
설명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 산18에 위치한다. 검은 간 토기 항아리(黑陶長頸壺)가 출토되었다고 신고되어 1994·1995년 학술 조사를 진행하여 초기 철기 시대의 돌무지돌널무덤(積石石棺墓) 2기, 삼국 시대 무덤 1기가 조사되었다.
돌널무덤은 하천과 접하는 야트막한 구릉지의 남서쪽 비탈면(斜面) 자락과 평지가 닿는 지점에 입지한다. 무덤 앞으로 하천이 흐르고, 뒤에는 구릉지가 위치한다. 돌널무덤은 약 2m 떨어져 나란히 분포하며, 상당 부분 파괴된 상태였다.
돌널무덤은 비탈면에서 흘러내려 쌓인 돌무지 위에 만들어졌다. 1호는 쌓여 있는 돌무지를 길이 6.5m, 너비 3.5m 범위로 들어낸 다음, 엉성하게 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뒷면에 깬돌(割石)을 채워 돌널을 만든 구조이다. 돌널은 길이 1.8m, 너비 0.5~0.8m이다. 돌널 바닥에는 판돌(板石)과 깬돌을 깔아 주검 받침(屍床臺)을 만들었다. 돌널무덤 위에 두께 0.3m 이상의 돌무지가 쌓여 있으며, 돌 뚜껑(石蓋)은 없었다. 이 때문에 나무 뚜껑(木蓋)을 사용하였다는 견해도 있고 돌널무덤 안에 나무널(木棺)를 사용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2호의 구조는 1호와 비슷하지만, 장축 방향이 다르고 돌널의 크기가 작다는 차이가 있다.
출토 유물로는 신고된 검은 간 토기 1점과 발굴된 간 돌살촉 3점이 있다. 검은 간 토기는 굽(臺脚)과 몸통의 경계가 분명하고 몸통의 최대 지름이 아래쪽에 있으면서 목이 긴 형태이다. 간 돌살촉은 슴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으며 슴베 없는 돌살촉은 크기가 커서 간 돌창(石槍)일 가능성도 있다.
신원리 유적은 경상북도 북부 내륙인 영양에서 확인된 초기 철기 시대의 무덤으로 문화의 확산 범위와 양상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있는 큰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