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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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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성곡리 유적(浦項 城谷里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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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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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9 판


성곡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포항 성곡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성곡리 1036-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가락바퀴, 반달 돌칼, 흔암리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배군열



설명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성곡리 1036-1 일원에 위치한다. 포항 성곡 지구 도시 개발 사업에 앞서 2008~2010년 조사하여, Ⅰ구역에서 집자리 57기, Ⅲ구역에서 집자리 3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도음산(해발 384.6m)에서 동쪽으로 뻗은 지맥 가운데 학림천을 따라 뻗은 능선의 끝자락에 입지하며, 남쪽으로 약 700m 떨어져 초곡천과 학림천이 합류하여 넓은 충적 평야가 형성되었다.

집자리는 Ⅰ구역에서 구릉 정상부를 비워둔 채 사면부에 일정한 무리(群集)를 이루는데 비해, Ⅱ구역에서는 사면부에 독립적으로 입지하며 집자리 간의 중복 양상은 확인되지 않는다. 집자리의 모양은 대부분 삭평되었으나, 확인 가능한 집자리는 대부분 장방형이다(Ⅰ-4·45호, Ⅲ-1~3호). 면적은 16~19㎡이며, Ⅲ-1호가 33.8㎡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로는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이 확인된다. 기둥 구멍은 Ⅰ-46호는 8주식(柱式), Ⅰ-49호는 12주식, Ⅲ-1호는 6주식이며, 다른 집자리에서는 배치 양상이 파악되지 않는다. 화덕 자리는 25기의 집자리에서 한쪽 면에 치우쳐 1개씩 확인되었으며, Ⅰ-32호는 긴 벽에 치우쳐 위치한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 18기, 점토식(粘土式) 1기, 돌 두름식(圍石式) 5기, 깐 돌식(浮石式) 1기이다. 구덩식은 길이 0.66~1.1m, 깊이 0.05m이며, 타원형에 가깝다. 바닥 면은 붉게 소결(燒結)되었으며, 내부에는 불탄 흙과 목탄 알갱이가 확인된다. 점토식은 Ⅰ-32호에서 모서리가 둥근 장방형으로 확인되었다. 길이 1.4m, 너비 0.8m로 가장 자리를 따라 덧띠를 두른 형태이다. 돌 두름식은 Ⅰ-29호에서 길이 1.6m, 너비 0.9m의 장방형이며, 15~20㎝의 납작한 강돌(川石)을 깔아 조성하였다. 벽 도랑은 7기를 제외한 나머지 집자리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형태는 ‘ㄱ’, ‘ㄷ’, ‘ㅡ’자 모양으로 구분되며, 그 중 ‘ㄱ’, ‘ㄷ’자 모양이 가장 많다. 크기는 너비 0.06~0.48m, 깊이 0.06~0.45m로 다양하다. 벽 도랑 내 기둥 구멍은 대부분의 집자리에서 확인되었으며, 간격은 0.6~0.8m이며, 단면은 원추형(圓錐形)이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Ⅰ-25·48호는 화재로 폐기되어 내부에서 불탄 흙 및 목탄, 탄화된 목재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짧은 빗금무늬 토기(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口脣刻目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二重口緣孔列短斜線孔列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 간 토기, 그물추, 가락바퀴, 버들잎 모양 간 돌살촉(柳葉式磨製石鏃), 마디 자루 간 돌검(有節式磨製石劍), 홈자귀(有溝石斧),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반달 돌칼, 돌끌(石鑿), 갈판(碾石)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Ⅰ구역 1호 313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410년), 17호 307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350년), 27호 264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10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은 초곡천 중류역에 위치한 대규모의 흔암리 유형 취락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