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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9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환상 열석, 선바위, 열석, 입석, 입암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카르나크 열석, 스톤헨지, 제천 황석리 고인돌, 옥천 석탄리 고인돌, 대구 진천동 선돌, 구례 금내리 유적 |
| 키워드 | 거석 문화, 거석기념물, 고인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영문 |
설명
땅 위에 자연석이나 일부 다듬어진 돌을 세워 숭배한 기념물과 민간 신앙의 대상물로 삼았던 유적을 말한다.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거석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 유산이며, 신석기 시대부터 축조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청동기 시대 이후 역사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존속된 유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선돌은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역사 시대로 마을 입구나 당산나무 옆에 길쭉한 자연석이나 기둥 모양으로 일부 가공한 돌 하나만 세워 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일반적이다.
켈트어로 ‘돌(石, men)’과 ‘높다(高, hir)’라는 의미로 ‘멘히어(Menhir)’라 하며, 영어로 ‘Standing Stone’, 희랍어로 ‘Monolith’라 한다. 한자로는 세워진 돌이라 하여 입석(立石)으로 쓰고 있으며, 민간에서는 선돌의 명칭은 입석, 입암, 선바위, 선바우, 삿갓바위, 벅수, 수구맥이, 돛대바우, 좆바우, 보지맥이, 괴석, 탑, 미륵 등 다양하게 불린다. 선돌이 있는 마을을 ‘입석’이나 ‘입암’이라는 지명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선돌은 대개 단독으로 세워진 것이 많지만 여러 개가 있는 경우 한 줄 또는 여러 줄로 나란하게 세워져 있는 것을 ‘열석(列石)’, 한 겹 또는 여러 겹을 둥글게 배치한 것을 ‘환상 열석(環狀列石)’ 등으로 부른다. 세계적으로 열석은 프랑스 카르냑 지역이 유명하며, 영국의 솔즈벨리 평원의 환상 열석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열석과 환상 열석은 인도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된 바 없다. 우리나라 선돌은 형태상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자연석을 수직으로 땅에 세워놓은 것으로 일반적인 선돌 형태이며, 다른 하나는 누석단 형태로 돌을 쌓고 그 가운데에 선돌이 세워진 적석 선돌이다.
민간 신앙에서 선돌은 장수(長壽)나 자손을 얻거나 자손이 잘되기를 비는 대상물로 여겨왔다. 또 마을 입구의 선돌은 벽사(辟邪)의 의미로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바라는 신앙에서, 논이나 밭둑 등에 세워진 선돌은 풍요와 다산을 바라는 의미에서 민간 신앙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이처럼 선돌이 지닌 고유의 종교성은 민간 신앙적인 것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여러 가지 종교 사상과 연결된다. 소위 수구맥이, 돛대바위, 보지맥이 등은 모두 풍수지리적인 해석이 가미된 것이며, 탑이나 미륵 등은 불교적인 색채가 농후한 것이다. 적석 선돌은 마을 입구나 마을 뒤에 위치하며, 대부분 ‘탑’이라고 부르고 있다. 전설상으로는 선돌은 옛날의 힘센 장사가 세웠다는 설, 마고(麻姑) 할머니가 죽어서 화석(化石)으로 된 것이라는 설, 땅에서 솟아났다는 설 등이 있다.
선돌의 구체적인 형태를 통하여 남성과 여성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윗부분이 둥글거나 네모난 모양의 경우 여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할머니 탑’이나 ‘할미바위’로 불린다. 남성을 상징하는 선돌은 끝이 뾰족하거나 삿갓 또는 세모난 형태이며 ‘할아버지탑’, ‘삿갓바위’, ‘쇠뿔미륵’이라 불리기도 한다. 화순 사수리 선돌은 가족 단위의 명칭으로 ‘서방바우’, ‘각시바우’, ‘애기바우’로 불리는 3개의 선돌이 있다.
선돌은 묘역 수호신, 지역 수호신, 풍요 기원신 등의 원시 종교적인 기능과 이정표라는 실용적인 기능을 가진다. 그 위치에 따라 첫째는 고인돌과 함께 세워진 무덤의 묘표 기능, 둘째 마을 입구에 세워 벽사(辟邪)나 수구막이 역할을 한 수호의 기능, 셋째 논밭이나 이를 내려다보는 얕은 구릉에 있는 풍요를 상징하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의 분류는 성격상 구분하기 위한 것일 뿐 2~3가지의 기능을 공유한 경우가 많다. 지역 수호신으로서 기능은 무엇보다도 선돌에 대한 전설이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 이는 단지 외지인 또는 외세에 대한 수호신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마을민 모두에게도 항상 경계심을 갖도록 한다는 점에 있어 현실적 기능이 두드려지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풍요 기원의 선돌은 암석 숭배로서의 선돌, 성기 숭배로서의 선돌, 칠성·달·거북 숭배와 관련되는 선돌이 있다. 성기석 형태의 선돌은 성 그 자체가 말하듯 생산성과 관계되며, 풍요 다산을 가져오는 것으로 믿어진다. 당신제 때 옷을 입힌다고 하여 선돌에 이엉으로 감싸거나 줄다리기를 한 후 그 줄을 감아 올리기도 하는 행위는 생산력 증강을 위한 토속적인 제의 방식이다. 제천 황석리의 선돌은 끝이 편평하여 여성을 상징하는 것과 뾰족하여 남성을 상징하는 것이 있고, 옥천 석탄리 안 터에서는 여성을 상징하는 선돌 중앙에 원을 음각하여 임신한 모습을 표현한 것도 있다.
선돌 중에는 남근석 형태는 특히 성기 숭배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성기 형태의 자연 암석을 기자(祈子)나 마을 수호, 풍수 비보의 대상으로 하는 신앙 형태, 암벽에 남근을 조각하여 사냥 어로의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 형태, 남녀 성기를 나무나 돌로 만들어 봉안하고 이를 신체로 모시는 신앙 형태 등이다.
이와 같은 선돌은 민간 신앙과 관련하여 역사 시대 이후에 세워진 것이 대다수이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청동기 시대부터 선돌을 세우고 숭배하였음이 밝혀졌다. 대구 진천동 선돌이 대표적이다. 이 선돌은 지표면에서 0.7m 높이의 단을 쌓아, 길이 20~25m, 너비 10~12.5m로 구획한 장방형 시설을 마련하고, 그 가운데에 선돌 1기가 세워져 있다. 선돌의 크기는 높이 2.1m, 너비 1.5m, 두께 1.1m이다. 작은 고인돌 덮개돌규모이다. 선돌의 우측 상부에 알 구멍(性穴) 6개가 파여져 있고, 서쪽면 상부에는 동심원 무늬가 새겨져 있다. 주변에서 민무늬 토기(無文土器) 편과 붉은 간 토기 편, 토제 대롱옥, 숫돌,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기단 주변에서는 청동기 시대 돌널무덤 5기가 확인되었다. 유물로 보아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장방형 기단과 선돌은 청동기 시대 제의와 관련된 시설물로 보고 있다. 구례 금내리처럼 고인돌과 선돌이 함께 세워진 사례도 많은데 이는 우리나라 선돌이 청동기 시대부터 축조되었다고 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