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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8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대구 상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8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돌널무덤, 알 구멍, 간 돌살촉, 간 돌검, 민무늬 토기, 바리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석범 |
설명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8 일원에 위치한다. 2011년 경북과학기술원 학위 과정 부지 조성 사업으로 성림문화재연구원(1구역), 영남문화재연구원(2구역),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3구역)이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집자리 8기, 돌널무덤(石棺墓) 2기, 알 구멍(性穴) 1기와 삼국~통일 신라 시대, 조선 시대의 무덤과 생활 유적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1,083m의 비슬산에서 내려오는 주 능선의 남쪽 끝자락에 입지하며, 서쪽에는 낙동강이 유입되어 형성된 넓은 충적 평야가 위치한다.
집자리는 1-가구역(1기), 2-나구역(4기), 3구역(3기)에 분포하며, 해발 78~87m에 입지하며 등고선과 나란하게 축조되었다. 집자리는 후대 경작 등으로 일부가 파괴된 상태였다. 평면 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판단되며, 크기가 가장 큰 집자리는 1-나구역 1호로 양쪽 짧은 벽이 유실되었지만, 잔존 길이가 7.22m이다. 내부 시설은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등이 있다. 벽 도랑은 ‘一’자 모양(1-가구역 1호, 2-나구역 4호), ‘ㄱ’자 모양 (3구역 2호)이 있다. 화덕 자리는 2-나구역 4호에 구덩식 1기가 확인되며, 기둥 구멍은 2-나구역 3호 바닥 가운데에서 2개가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모두 지하식의 석축형(石築形)이다. 1-가구역 돌널은 길이 1.61m, 너비 0.44m, 깊이 0.34m로 서쪽 짧은 벽(短壁) 쪽에 편평한 깬돌(割石)을 깔아 주검 자리(屍床)를 마련하였다. 출토 유물은 동쪽 짧은 벽에서 간 돌살촉 5점이 확인되었다. 2/3 정도 유실된 2-나구역 돌널무덤은 북쪽 짧은 벽 모서리 바닥에 간 돌검 1점을 부장하였다. 이외에 알 구멍은 2-나구역에서 확인되었다. 자연 암반 위에 둥근 도구를 이용하여 시계 방향으로 돌려 만든 13개의 구멍이 남아 있다. 이는 보통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며, 새겨진 알 구멍은 별자리로 인식하고 있다(김일권, 1998).
유물은 돌널무덤에서 간 돌검, 간 돌살촉, 집자리에서 민무늬 토기 편, 바리 토기(鉢形土器), 간 돌검 편, 돌끌(石鑿), 갈돌(碾石), 숫돌(砥石) 등 20여 점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조성 시기는 석축형 돌널무덤과 부장된 간 돌살촉, 돌검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