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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17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대구 봉산동 고인돌군, 대구 봉산동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230-1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고인돌, 돌도끼, 붉은 간 토기, 알 구멍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김광명 |
설명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230-1에 위치한다. 신천의 서쪽에 위치하는 수도산(해발 78m)의 북쪽 소구릉에 입지한다. 『대구부사(大邱府史)』에 월견산 정상부에 5기, 산록에 2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1호는 덮개돌(上石)의 동쪽에 판돌(板石)로 축조한 돌덧널(石槨)이 노출되어 있었으며, 돌도끼(石斧)와 붉은 간 토기(赤色土器) 편이 수습되었다. 1호에서 북쪽으로 약 15m 떨어져 2호가 위치한다. 덮개돌의 길이는 1.55m이며, 하부에는 강돌(川石)만 깔려있으며 돌덧널은 확인되지 않았다. 1호에서 동쪽으로 약 12m 떨어져 3호가 위치한다. 가장 큰 규모로 ‘구암(龜岩)’으로 불렸으며, 현재 대구 제일중학교 교정에 이전되어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화강암제로 길이 1.9m, 너비 1.3m, 두께 0.8m이고, 윗면에는 지름 5㎝ 내외의 알 구멍(性穴)이 3개가 있다. 이외에 나머지 고인돌은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유적은 금호강 유역의 고인돌이 대부분 소하천 변의 자연 제방 상이나 선상지 상에 분포하는 것과는 달리 구릉 정상부에 분포한다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