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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 시대=청동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15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대전 대정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정동 300-1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고인돌, 돌널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형원 |
설명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정동 300-1 일원에 위치한다. 대전 종합 유통 단지 조성에 따라 1999~2000년 충남대학교박물관이 시굴 조사하여 유구와 문화층을 확인하였고,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에서 2000~2002년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그 결과 집자리 5기, 고인돌 3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대전의 서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갑천에서 서쪽으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갑천의 지류인 건천과 주변 산지에서 뻗어 내린 낮은 구릉과 평야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곡간 평야를 사이에 둔 북쪽 구릉에는 주거 공간, 남쪽 구릉에는 무덤 공간이 약 250m 정도 거리를 두고 입지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5기 모두 원형이며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를 지닌 송국리식이며 지름 3.7~5.25m, 깊이 0.35~1m 정도이다. 출토 유물은 외반 구연(外反口緣)의 송국리식 토기와 붉은 간 토기 등의 토기류와 반달돌칼,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가락바퀴, 돌살촉(石鏃) 등의 석기류가 있다.
1호 고인돌은 덮개돌(上石)과 받침돌(支石) 일부가 남아있지만, 하부 구조나 출토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2호는 2개의 덮개돌 중 하나가 길이 1.95m, 너비 1.12m, 깊이 0.5m이며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덮개돌의 위치와 형태로 보아 같은 동일한 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돌널무덤이 이 고인돌의 하부 구조일 가능성도 있다. 해발 고도 70m의 평탄한 곳에 위치한 3호의 덮개돌은 장방형이며, 길이 2.74m, 너비 1.76m, 깊이 0.56m이다. 받침돌도 모두 장방형이며 받침돌 아래에는 길이 30㎝, 두께 15㎝ 내외의 깬돌(割石)이 다량 깔려 있다. 깬돌 사이에서 숫돌(砥石) 1점이 출토되었으며 주변에서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편 1점이 수습되었다.
돌널무덤은 판 후 벽석없이 바닥에만 판돌(板石) 9매를 깔아 축조하였다. 규모는 길이 2.19m, 너비 1.25m, 깊이 0.25m이며, 통 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값은 집자리 KC-001, KC-005에서 각각 2440±40 BP, 2290±40 BP, 2540±40 BP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