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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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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5 판


남장리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홍성 남장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남장리 60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돌널무덤, 구덩이, 도랑, 역삼동 유형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황재훈



설명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남장리 601 일원에 위치한다. 홍성 남장 택지 개발 사업 지구 건설에 따라 2008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 17기와 돌널무덤(石棺墓) 1기, 구덩이, 도랑(溝)을 비롯하여 삼국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집자리와 무덤, 가마 등이 확인되었다. 남장리 주변 일대는 해발 100m 이하의 저산성 구릉 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과 남서쪽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유적은 해발 55m 구릉 지대에 해당하는데 서쪽사면에는 집자리, 동쪽 사면에는 무덤이 각각 위치한다. 유적 전반적으로 삭평이 심하게 진행되어 집자리나 무덤의 잔존 상태가 불량한 편이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 방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1~5호는 세장방형으로 장축 7.2~13.4m 정도이다. 유실이 심한 1호와 2호는 전체적인 면적이나 내부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3호의 경우 긴 벽을 따라 벽 도랑(壁溝)이 돌아가며 짧은 벽 쪽에 치우쳐 지름 0.4~0.5m 크기의 무시설식 화덕자리(無施設式爐址)가 설치되었다. 바닥면에는 작은 구멍이 확인되는데 특히 화덕 자리 주변에서 집중된다. 4호에서도 긴 벽과 짧은 벽을 따라 벽 도랑이 설치되어 있으며 벽 도랑 주변과 벽면을 따라 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평면 타원형의 무시설식으로 중앙과 북벽 가장자리에 한 기씩 시설되어 있다. 5호의 긴 벽에는 벽 도랑이 시설되었으며 내부에서는 작은 구멍이 확인된다. 무시설식 화덕 자리는 짧은 벽 양단에 설치되었다. 바닥면 중앙부에는 지름 0.3m의 기둥 구멍이 집중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보조 기둥이 확인된다.

장방형 집자리는 모두 4기로 장축 3.8~5.8m, 단축 2.1~3.1m 정도이다. 6호에서는 긴 벽 일부에 벽 도랑이 확인되며 동벽을 따라 기둥 구멍이 열을 지어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짧은 벽에 치우쳐 1기가 확인된다. 7호는 별다른 내부 시설 없이 불에 구워진 바닥면만이 확인되는데 비교적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8호에서는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등이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중앙부와 남쪽 짧은 벽에 각각 한 기씩 설치되었으며 각 모서리에는 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9호는 화재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면 중앙에 2기의 화덕 자리가 1.5m 간격으로 설치되었다. 기둥 구멍은 중앙부와 서쪽 긴 벽을 따라 열을 지어 확인된다.

방형 집자리인 10~17호는 세장방형과 장방형과 달리 대부분 벽면이 남아있어 규모와 내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규모는 장축 2.1~4.6m, 단축 1.8~3.5m 정도이며 벽 도랑, 화덕 자리,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등이 확인된다. 화덕 자리가 설치되지 않은 11~14호는 용도가 다른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文土器) 등 다수의 민무늬 토기와 함께 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가 확인되며 일부 토기 바닥면에는 지름 2~3㎝ 내외의 구멍이 뚫려 있다. 석기는 매우 다양한 편으로 타원형 구덩이, 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磨製石鏃), 반달돌칼, 숫돌(砥石),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달도끼(環狀石斧), 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돌도끼, 가락바퀴, 갈판(碾石), 돌끌(石鑿), 박편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총 7기가 확인되었는데 주로 서사면 중앙부에서 집중 분포한다. 평면 원형, 장방형, 방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규모는 0.9~2.4m 정도이다. 내부에서는 소량의 민무늬 토기만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해발 43m에 위치한다. 절반 이상 삭평되었으며 뚜껑돌(蓋石)과 벽석 또한 모두 유실되었다. 남은 규모는 남북 방향의 짧은 벽 0.84m, 긴 벽 0.88m, 깊이 0.24m 정도이다. 바닥면에 남은 벽석 흔적으로 보아 무덤방(墓室)은 얇은 판돌(板石)을 바로 세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벽 바닥에서 대롱옥(管玉) 7점이 출토되었다.

남장리 유적은 집자리 내부 시설과 출토 유물을 통해 역삼동 유형 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5기의 집자리에서 이루어졌는데 3호(2800±50 BP)와 17호(2790±50 BP), 5호(2700±40 BP, 중앙값)와 2호(2670±40 BP), 12호(2660±40 BP)의 연대치를 참고한다면 기원전 10세기를 상한으로 기원전 8세기 즈음까지 존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