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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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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궁동 477 유적(大田 弓洞477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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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대전 궁동 477 유적, 대전 궁동 장대 지구 유적, 대전 장대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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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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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14 판


궁동 477 유적
기본 정보
동의어 대전 궁동 477 유적, 대전 궁동 장대 지구 유적, 대전 장대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대전 유성구 궁동 477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독무덤,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박양진



설명

대전 유성구 궁동 477 일원에 위치한다. 토지 구획 정리 사업 과정에서 유적이 확인되어 2001년 충남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여 북쪽 구릉에서 집자리 5기, 구덩이 5기, 독무덤(甕棺墓) 3기, 돌널무덤(石棺墓) 3기와 남쪽 사면에서는 백제 시대의 집자리 2기,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 민묘 2기가 확인되었다. 북쪽으로 220m 정도 떨어진 구릉 지대에 동일 시기에 해당하는 대전 궁동 유적이 위치한다.

집자리는 모두 구릉의 북쪽 능선에 조성되어 있는데, 평면 장방형 3기, 방형의 송국리식 1기, 추정 송국리식 1기 등 총 5기가 조사되었다. 장방형 집자리는 장축 방향이 모두 등고선과 평행한다. 1호는 길이 8.26m, 잔존 너비 1.88m, 깊이 0.3m이며, 기둥 구멍, 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 주춧돌(礎盤)이 있다. 3호는 평면 말각 방형으로 길이 3.56m, 너비 3.4m, 깊이 0.58m이다.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그 양단에 기둥 구멍이 있다. 출토 유물로는 민무늬 토기 편, 외반 구연 토기(外反口緣土器) 편, 붉은 간 토기, 가락바퀴, 반달돌칼, 돌끌(石鑿), 삼각 돌칼 등이 있다. 구덩이는 크기와 형태상 집자리로 보기 어려운 것으로서 성격도 불분명하며 출토 유물도 소량의 민무늬 토기 편에 불과하다.

구릉 북쪽의 능선에서 모두 3기의 돌널무덤과 3기의 독무덤이 조사되었는데, 1호 돌널무덤은 3호 집자리를, 3호 돌널무덤은 1호 집자리를 파괴하고 축조된 것이 특징적이다. 1호는 길이 1.55m, 너비 0.61m, 깊이 1.61m, 2호는 길이 2.01m, 너비 0.7m, 깊이 0.18m, 3호는 길이 1.44m, 너비 0.4m, 깊이 0.46m이다. 1호 돌널무덤에서는 간 돌검 1점, 돌살촉(石鏃) 1점, 2호에서는 돌살촉 1점, 3호에서는 간 돌검 1점 등이 출토되었다. 독무덤은 모두 독의 상부가 삭평되거나 유실되어 그 형태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1호 독무덤의 무덤 구덩이(墓壙)는 잔존 깊이 0.3m, 잔존 너비 0.49m이다.

궁동 장대지구 유적은 청동기 시대 여러 시기의 집자리와 그 집자리를 파괴하고 조영된 무덤이 확인되어 청동기 시대 취락의 전체적인 양상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