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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3:08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석겸 |
| 시대 | 신석기 시대 |
| 지역 | 한반도 중서부 지역 |
| 관련 정보 | |
| 유적 | 서울 암사동 유적, 봉산 지탑리 유적 |
| 키워드 | 신석기 시대 석기, 농경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24 |
| 집필자 | 박성근 |
설명
돌낫은 일반적으로 곡류 등 식물성 자원을 베거나 자르는 수확구이다. 신석기 시대 초기 잡곡 농경과 관련된 유물이 다수 확인된 유적에서 출토되는 점, 날[刃部]의 형태가 수확에 용이한 점 등을 근거로 농경과 관련된 도구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출토된 수량이 적어 그 구체적인 사용 양상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제작 방식에 따라 간 돌낫과 뗀 돌낫으로 구분된다. 전체를 갈아 제작한 간 돌낫은 봉산 지탑리 유적에서만 확인되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뗀 돌낫으로 제작 방식이 비교적 거친 편이다. 이는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 간 돌낫이 한반도 전역에서 확인된다는 사실과 대조적이다.
특히 신석기 시대의 돌낫은 서울 암사동 유적 등 중서부 지역의 전기 유적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며, 현재까지 남부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돌낫은 지역적 특성을 보이는 석기로 볼 수도 있다.
향후 돌낫의 구체적인 용도나 기능에 대한 검증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유사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도구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연구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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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 연구소. (1961). 지탑리 원시 유적 발굴 보고. https://www.riss.kr/link?id=M80483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