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056: 두 판 사이의 차이
dkamaster 800-0056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
dkamaster 800-0056 자동 업로드 (entry_type=개념) |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개념정보 | {{개념정보 | ||
| 한글표제어=신석기 시대 돌끌 | | 한글표제어=신석기 시대 돌끌 | ||
| 이칭별칭=돌대패, 석착 | | 이칭별칭=돌대패, 석착 | ||
| 시대=신석기 시대 | | 시대=신석기 시대 | ||
2026년 1월 20일 (화) 13:08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돌대패, 석착 |
| 시대 | 신석기 시대 |
| 관련 정보 | |
| 유적 | 고성 문암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군산 가도 조개더미, 여수 돌산 송도 조개더미, 부산 동삼동 조도 조개더미, 합천 봉계리 유적, 제주 사계리 유적, 태안 안면도 고남리 조개더미, 영월 연당 쌍굴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인천 중산동 유적 |
| 키워드 | 신석기 시대 석기, 돌도끼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신석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24 |
| 집필자 | 윤정국 |
설명
돌끌은 신석기 시대에 나무나 뿔 같은 재료를 깎거나 파내는 작업을 하는 데 사용한 가공구로, 돌로 만든 대패라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가 아직 부족하여 지역과 시기에 따른 뚜렷한 형식적 차이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따라서 향후 명확한 기종 분류와 형태적 검토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신석기 시대 돌끌은 인천 운서동 유적·중산동 유적, 화성 석교리 유적, 보령 송학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태안 안면도 고남리 조개더미, 양양 오산리 유적, 영월 연당 쌍굴 유적, 군산 가도 조개더미, 여수 돌산 송도 조개더미, 합천 봉계리 유적,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범방 유적·동삼동 조개더미, 제주 오등동 유적·사계리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 조기 유적에서도 출토되나 대체로 전기 이후부터 출토 수량이 늘어나고 이는 후기까지 유지된다. 한편 통영 연대도 유적, 합천 봉계리 유적 등에서 출토된 자귀날 돌도끼 중 일부가 돌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돌끌은 세장방형 평면 몸체에 간 날[刃部]이 있는 형태이다. 단면은 장방형, 방형, 반원형 등이 확인된다. 길이는 5∼10cm 정도이며, 길이와 폭의 비율이 3:1 이상으로 폭에 비해 길다. 석기의 단축 변 날은 한쪽 면을 사선으로 간 외날로 그 전체적인 모양이 소형 자귀날 돌도끼와 유사하다. 돌감은 이암과 셰일 등 퇴적변성암계 암질이 주로 사용되었다. 전면을 대체로 매끈하게 갈았기에 타격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석기 제작 과정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일부 면에 두드려 때린 흔적[敲打痕]이 있어 다양한 석기 제작 단계를 거친 후에 최종적으로 갈기[磨硏]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돌끌은 목공구인 돌도끼를 이용하여 목재를 벌목한 후 전체적인 형태를 깎아낸 다음, 목재의 껍질을 벗겨 내거나 세밀하게 가공할 때 사용되었을 것이다. 다른 도끼와 마찬가지로, 당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기술 수준, 사회 구조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미지
참고문헌
- 국립대구박물관. (2005). 머나먼 진화의 여정 사람과 돌. 통천출판사. https://www.riss.kr/link?id=M10523014
- 윤정국. (2020). 한국 신석기시대 석기제작과 체계. 학연문화사. https://www.riss.kr/link?id=M15744028
- 하인수. (2009). 신석기시대 석기의 종류와 양상. 박물관연구논집, 15, 5-54. https://www.riss.kr/link?id=M13041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