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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12:33 판
설명
농경은 사전적으로 논밭을 갈아 농사를 짓는 행위를 가리킨다. 농업 역시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인간의 이용을 목적으로 특정 동식물을 관리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농경을 포함하는 좀 더 넓은 범주의 활동이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 농경’을 포함하여 고고학 논의에서 농경은, 재배 활동에 따라 형성된 순화(domestication) 작물에 생계의 상당한 정도 또는 그 이상을 의존하는 사회 현상으로 규정된다(김민구, 2013; Harris, 2010).
차일드(Childe, G. V.)가 ‘신석기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신석기 시대를 인간사의 혁명적 전환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이래, 신석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농경과 정주 생활, 토기, 간석기의 네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규정되어 왔다. 기술적 혁신을 토대로 한 새로운 도구의 제작과 정주 농경이 이루어지면서 생활상 전반의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가 부의 축적, 사회 계층 분화, 나아가 도시와 국가 발생이라는 ‘도시 혁명’으로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신석기 혁명을 불러온 네 가지 요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변화는 단절적이지도 않고 그 방향 또한 단일하지도 않다. 이동을 주로 하는 수렵 채집 사회와 정착 농경 사회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으며, 정착과 농경이 반드시 도시와 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경으로의 이행 과정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문화적·환경적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생계 경제의 양상과 그 발전 경로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즉 문화적 활동으로서의 재배, 생물학적 변화인 순화,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농경을 정의하고 상호 간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양한 인류학,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땅 갈기, 물 주기, 잡초 제거, 거름주기, 씨 뿌리기 등 특정 식물의 생장에 도움을 주는 재배 활동이 농경 사회뿐만 아니라 수렵 채집 사회에서도 이루어졌음이 확인된다. 예를 들어 밤나무나 칠엽수 열매를 집중적으로 이용하였던 일본 조몬(繩文) 시대의 경우, 밤나무를 재배하였을 가능성은 있으나 그 순화종(馴化種)은 출현하지 않았다. 이는 수렵 채집 사회에서 야생 밤나무를 재배한 결과이다(Kitagawa, Yasuda, 2004). 순화종은 인간의 개입으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질적·유전적 변화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그 재배 활동이 상당 기간 지속되었음을 보여 주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순화가 이루어지는 순화종의 기원지는 한정되어 있으며, 신석기 시대 한반도를 비롯한 대부분은 순화종이 전파되어 들어온 주변 지역에 해당한다. 그리고 순화종의 출현이 곧 농경과 정주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상을 고려하면 농경은 순화종에 생계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면서 문화적, 사회적으로 변화한 상태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농경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첫 번째는 신석기 초기 단계부터 농경이 있었다는 주장으로, 신석기 시대 이른 시기에는 원시적 형태의 괭이 농사(서포항 1·2기, 궁산 문화 1기의 괭이와 뒤지개, 갈돌 등의 도구)가 이루어지다가, 중기 이후 돌삽과 돌보습을 이용하는 보습 농사로 발전하였다고 본다. 이는 북한 지역의 1950∼1960년대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제기되었으며, 남한 지역에서도 1970년대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돌괭이와 갈판을 근거로 소규모의 괭이 농사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상의 주장은 농사와 관련되었다고 추정되는 괭이와 보습, 갈판 등의 도구를 근거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정말 농사 도구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더욱이 재배한 식물 유체가 신석기 중기 이후에나 출토된다는 점에서(궁산 문화 2기-봉산 지탑리 2지구 2호 집자리 출토 탄화 피 또는 조, 봉산 마산리 7호 집자리, 평양 남경 31호 집자리 출토 탄화 조), 괭이 농사 단계는 가설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후 특정 도구와 유구, 순화종과 같은 단편적 요소만으로 농경을 규정하는 대신, 신석기 시대 생계 체계가 변화하는 과정과 방식에 대한 다각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즉 유적별 유구와 유물 복합체에 대한 연구는 물론, 초기 농경과 관련한 식물 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습하여 분석하거나 곡물의 눌림흔적[壓痕]이나 식료 처리 도구의 잔존 성분을 분석하는 등 간접 자료에 대한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그 결과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는 기본적으로 수렵 채집 사회이며, 식물 재배 역시 기존의 수렵 채집 활동에 부가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식이 확장되고 있다. 다만 신석기 사회가 작물 재배를 도입하고 활용하는 방식과, 그에서 비롯된 사회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상이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먼저, 초기 농경의 도입은 신석기 시대의 생계 방식은 물론 집단의 규모와 정착도, 사회 복합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상당한 변화를 불러왔다는 의견이다(송은숙, 2001; 신종환, 2020; 안승모, 2006; 임상택, 2008·2010; 하인수, 2006; Ahn et al., 2015 등). 신석기 시대 전기에서 중기 무렵 재배 전략이 도입되면서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서 집단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이후 공간 점유상 압력에 따라 중서부 지역의 문화가 한반도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하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수렵 채집 문화를 대체(한영희, 1996)하였다거나, 최소한 생계 형태나 집단의 사회적 성격 등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문화가 형성(하인수, 2006)되었다는 추정이 제기되기도 하였다(임상택, 2006·2008·2010).
이에 반해, 신석기 시대의 농경 활동을 인정하더라도 신석기 시대 후기까지는 수렵 채집 활동에의 의존도가 높았으며, 농경으로 인한 물질문화의 변화가 한반도 전역에서 나타나는 것은 청동기 시대 전기 이후라는 의견도 있다(김장석, 2003·2018). 신석기 시대의 농경 도입과 적용 그리고 이와 관련된 생계-주거 체계상의 변화를 인정하더라도 그 속도나 방식 등 변화의 양상에서는 지역별 차이가 뚜렷하며(이준정, 2002), 실제 생계에서 잡곡이 차지한 비중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논의(곽승기, 김경택, 2018; 이준정, 2011; Choy et al., 2012)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신석기 시대 한반도에서 재배의 대상이 된 작물은 조, 기장, 콩, 팥이다. 이 중 신석기 시대 전반에 걸쳐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된 작물은 조와 기장이다. 조와 기장 모두 10,000년 전부터 중국 화베이(華北) 지방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여 순화종의 상태로 한반도로 전파되었으며 신석기 시대 전기(창녕 비봉리 유적,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등)부터 나타난다. 신석기 시대 중기 이후에는 한반도 전역, 특히 해안 지역에 입지한 다양한 규모의 주거 유적(시흥 능곡 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등)에서 확인되는데, 주로 조를 중심으로 하되 기장이 추가되는 작물 구성을 보인다. 다만 신석기 시대 후기, 한반도 남부 내륙 지역의 대규모 주거 유적 중에는 기장의 비중이 더 높은 사례도 있다. 콩이나 팥 등의 두류는 유적에 따라 소량만 확인된다. 콩과 팥의 경우 야생종 원산지가 한반도 일대이며 야생종과 순화종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지만 적극적 관리와 이용의 대상이었다고 보기에 무리가 없다(이경아, 2014; Tian et al., 2010).
벼와 밀의 경우 낟알(일산과 김포의 토탄층을 비롯하여 옥천 대천리 유적, 고성 문암리 유적 등)과 식물 규산체(일산 토탄층 출토 가로 생선뼈무늬 토기, 김해 농소리 조개더미 겹아가리 토기의 바탕흙) 출토 사례가 보고되었고, 이를 근거로 신석기 시대에 벼가 재배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벼와 밀의 출토 사례는 매우 한정적이며, 후대의 교란으로 혼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식물 고고학자가 분석한 유적에서 조와 기장만 검출되고 낟알 크기가 훨씬 더 큰 쌀은 전혀 나오지 않는 점, 빗살무늬 토기 눌림흔적 분석에서도 볍씨 자국이 발견되지 않는 점, 동아시아 작물 조성의 시공간적 분포상 등을 모두 고려할 때 신석기 시대 벼와 밀 재배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신석기 시대의 경작 유구는 거의 확인되지 않아 신석기 시대의 경작 방식에 대한 논의 역시 아직 원론적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석기의 형태와 기능, 인류학적, 역사적 자료에 근거하여 화전(火田)이나 범람원 경작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고성 문암리 유적의 고랑과 이랑을 갖춘 형태의 유구(하층 밭)가 신석기 시대 중기의 밭으로 보고되면서 주목받기도 했으나, 집자리와 경작층의 탄소 연대, 상하층 밭의 층위 관계, 자연과학 분석 등을 고려할 때 신석기 시대 경작 유구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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