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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캉자툰 유적(北票 康家屯遺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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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천선행 | | 집필자=천선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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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3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강가둔 유적(北票 康家屯遺蹟)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중국 |
| 소재지 |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차오양시(朝陽市) 베이뱌오시(北标市) 캉자툰촌(康家屯村)의 다링강(大陵河) 남쪽 기슭 |
| 관련 정보 | |
| 성격 | 성 |
| 키워드 | 샤자뎬 하층 문화, 석성지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천선행 |
설명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차오양시(朝陽市) 베이뱌오시(北标市) 캉자툰촌(康家屯村)의 다링강(大陵河)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1992년에 발견되어, 1997~2000년 조사되었다. 캉자툰 유적은 샤자뎬 하층 문화(夏家店下層文化) 석성지로, 북부는 다링강(大凌河)으로 인해 훼손되었지만 평면 형태는 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판단된다. 층위는 표토를 제외하고 5개 층으로 나뉜다. 층위와 유물에 따라 조기(5층 하면下面 건축 유적), 중기(4층 하면 건축 유적), 만기(3층 하면 건축 유적)의 3기로 나뉜다. 유적은 성벽과 해자, 성 내부의 담장 시설, 도로, 집자리, 석축혈(石築穴), 석함(石函), 구덩이(灰坑) 등이 확인되었다.
성벽 단면은 사다리꼴로 바깥쪽을 청회색 판돌(板石)으로 쌓고, 내부를 크고 작은 석괴(石塊)와 흙을 채워 쌓았다. 규모는 남쪽 벽 길이 135m, 동쪽 벽 길이 85m이고, 남아 있는 성벽 상부는 너비 2~2.2m, 기부 너비 2.7m, 높이 1~1.5m이다. 남쪽 성벽과 동쪽 성벽에는 마면(馬面)이라 불리는 치와 유사한 시설이 3개씩 설치되었고, 모서리에는 각대(角臺)가 한 개씩 있다. 마면은 평면 마제형으로 길이 3m, 너비 3.2m, 높이 1.2~1.3m로, 외면은 판돌로 쌓고, 내부는 석괴와 황토로 채웠다. 성문은 동쪽 벽에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는데 성문 너비 1.7m이다. 해자(壕)는 동쪽 벽과 남쪽 벽 밖으로 2.2m 떨어진 곳에 상부 너비 7.5~9m, 높이 3m의 규모로 확인되었다. 해자 내 3개 퇴적층이 확인되고, 1층과 3층에서 대량의 석괴가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성벽은 크게 2번 무너져 수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기 성벽 바깥으로는 너비 0.4m를 덧붙인 만기의 성벽이 확인되어 캉자툰 성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사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성 안에는 내부를 구획하는 담장 시설인 원장(院墙), 격장(隔墙)이 있다. 원장은 너비 0.5~0.6m, 격장은 너비 0.3~0.4m이다. 원장에는 원문(院門)과 배수구가 딸려 있다. 성안에서 도로도 확인되는데, 너비 1.7m이고 형태는 다양하다. 원장의 한쪽 면에는 돌을 깐 도로(石墁道)가 있으며, 너비 1m, 높이 0.5m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폭 0.7m의 흙 길로 된 도랑(土路溝)이 있다. 원장과 격장은 성안의 촌락을 몇 구로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원장은 출입문을 통해 연결되고, 돌로 깐 도로 옆의 흙길로 된 도랑이 배수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석축혈(石築穴)은 16기로, 흙을 파고 벽을 따라 판돌을 쌓아 만들었다. 지름 1~1.2m, 깊이 1.15~1.9m이며, 석축혈 입구 상부를 다시 성토하고 석축을 돌려 쌓았다. 석축혈의 일부에서는 사람 뼈가 확인되며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2호 석축혈은 평면 형태 원형이고, 단면은 주머니 모양으로 아래쪽으로 갈수록 넓어진다. 바닥 지름 1.32m, 입구부 지름 0.96~1.3m, 깊이 1.5m로, 입구부에는 돌을 돌렸다. 내부에서 3구의 사람 뼈가 확인되었다. 상부의 사람 뼈는 성년 여성으로 몸은 바로 눕히고 팔다리를 굽혀 묻었고(仰身屈肢), 대퇴골 아래와 두개골 아래에서 유아의 뼈가 확인되었다. 아동의 머리 방향은 남쪽이며, 매장 방식은 바로 펴묻었다(仰身直肢葬). 사람 뼈 주변과 하부에서 관(罐) 5점, 언(甗) 2점, 력(鬲) 1점, 호(壺) 1점이 출토되었으나 모두 훼손되었다. 석기류는 석도, 석서(石鋤), 석산(石鏟), 석부(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석함(石函)은 5층 상부에서 확인되는데, 4개의 판돌을 세워 장방형으로 만든 것이다. 11호 석함은 장방형으로 길이 0.7m, 너비 0.58m, 4개의 판돌을 이용해 상자 형태로 만들었다. 석축혈과 석함은 다른 유적에서는 보이지 않는 요소로, 특히 석축혈 내에서 사람 뼈가 확인되고 토기를 파쇄하는 양상을 통해 제사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집자리는 49기가 확인되었다. 대형은 직경 5~6.5m, 중형은 직경 3.5m, 소형은 2.5m로 구분된다. 대형과 중형 집자리는 집자리 외연에 석벽을 쌓았으며 형태는 원형 혹은 방형이다. 또한, 한 면에 원형 내지 방형의 토대가 마련되어 있다. 집자리는 원형이 시기적으로 비교적 이르며, 토대는 원형이고 출입구는 남쪽에 있다. 이후 방형으로 변화되고 토대는 방형 또는 없는 것이 등장하며 출입구는 동쪽과 북쪽에서 확인된다. 19호는 대형으로 집자리와 토대가 모두 원형이다. 벽은 토벽이고 토대 외연은 석축이다. 토벽 너비 0.75m로, 중앙부와 연이은 북쪽에 타원형으로 불탄 흔적 2곳이 확인된다. 출입문은 남쪽에 있으며, 너비 1.04m이고, 출입구 좌우로 방형의 대(臺)가 덧붙여져 있다. 4호는 길이 3.3m, 너비 3.1m이고, 집자리 외면에 판돌을 쌓고, 내면에 흑회색 점토로 채웠다. 출입문은 북쪽으로 너비 0.85m이며 바닥면은 경화된 황색토로 두께 0.15~0.7m이다. 구덩이는 보고되지 않았으나 출토 유물로 보아 37호까지 확인된다.
유적의 출토 토기는 협사도를 중심으로 홍갈도와 회도가 확인된다. 관, 옹(甕), 력, 언, 분(盆), 호, 시루, 정(鼎), 발(鉢), 두(豆), 개(蓋), 반(盤), 배(杯), 방추차(紡錘車), 어망추(漁網錐) 등이 확인되었다. 문양은 승문(繩文)이 가장 많고, 승문 부가퇴문(附加堆紋)과 현문(弦文)이 확인되었으며, 일부는 표면을 마연한 것도 있다. 석기는 뗀석기가 대다수로 석산, 석서, 석부 등이 있고, 마제 석기는 석도, 석부, 석산, 석착(石鑿), 석분(石錛), 석촉, 석겸(石鎌), 절구, 용범(鎔范) 등이 있다. 이외에 동도(銅刀), 골침(骨針), 골촉(骨鏃), 골비녀, 골추(骨錐), 복골(卜骨)이 확인되었다. 특히 토기의 기종 구성이 우(盂)와 우형력(盂形鬲), 언 등이며, 승문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전형적인 샤자뎬 하층 문화의 특징을 나타낸다. 또한 석축혈 출토 유물 중 홍갈색의 고경호(高頸壺)와 고족발(高足鉢)이 출토되었는데, 고경호는 말사구연(抹斜口緣)으로 동체부에 작은 횡상이(橫狀耳)가 부착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가오타이산 문화(高臺山文化)에 해당하는 토기이다. 따라서 캉자툰 유적은 샤자뎬 하층 문화에 속하는 대표적인 성지 유적이자, 주변 지역과의 당시 교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 유적이다.
한편 중국학계에서는 잉진강(英金河)·인허강(陰河) 유역에서 발견되는 샤자뎬 하층 문화 성지들을 원시 장성으로 판단하였다. 높은 산에 위치하는 성지는 제단의 성격, 산록에 위치하는 것은 방어적 성격, 평지에 입지하는 토성은 생활을 위한 일반 취락으로 분류하여, 이들 조합을 생활 공간·방어 시설·제의 시설 등이 완비된 방국시스템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잉진강, 인허강 유역 외에도 츠펑(赤峰) 부근에서 279개소, 아오한기 멍커강(孟克河) 유역에서 400여개소, 자오라이강(敎來河) 유역에서 500개소에 이르는 성벽을 갖춘 취락 유적이 확인된다. 또한 다양한 규모의 성이 전체적으로 강을 따라 띠모양으로 배치되어 지형에 따라 규모가 다양할 뿐 대소성군간의 일정한 규칙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석성지는 200~900m 거리마다 밀집 분포하며, 대부분의 성지 유적 내에서 주거 생활을 위한 공간이 확인되어 일반적인 취락 형태일 가능성이 많다. 또한, 랴오시 지역 신석기 시대 아오한기 싱룽와 유적(興隆窪遗址), 린시 바이인창한 유적(白音長汗遗址)에서도 도랑을 가진 대소 취락이 군집으로 확인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지 취락 간 계층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