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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야요이 토기(弥生土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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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지역=북부 규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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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일본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창희 | 천선행
| 집필자=이창희, 천선행
| 관련 시기=야요이 시대
| 관련 지역=북부 규슈
| 관련 유적=무코가오카 조개더미, 이타즈케 유적, 오사유키 유적, 나바타케 유적, 마가리타 유적, 야마노테라 유적, 유우스 유적, 우키쿤덴 조개더미, 조노코시 조개더미, 스구 유적
| 성격=유물 | 토기 유형
| 관련 개념=야요이 시대 | 조몬 토기 | 민무늬 토기 | 이타즈케Ⅰ식 토기 | 저장용 항아리 | 취사용 독 | 바리 | 굽다리 접시 | 사하라 마코토 | 야마노테라식 토기 | 유우스식 토기 | 이타즈케식 토기 | 조노코시식 토기 | 스구식 토기 | 돋을띠무늬 토기 | 구로카와식 토기 | 깊은 바리 | 얕은 바리 | 붉은 간 토기 항아리 | 이타즈케Ⅱ식 토기 | 스구Ⅰ식 토기 | 넓은 입 항아리 | 긴 목 항아리 | 스구Ⅱ식토기 | 붉은 간 토기 | 항아리 모양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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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2 판


야요이 토기(弥生土器)
기본 정보
동의어 미생 토기
시대 청동기 시대
지역 북부 규슈
관련 정보
유적 스구 유적
키워드 토기, 조몬 토기, 민무늬 토기, 이타즈케Ⅰ식 토기, 저장용 항아리, 취사용 독, 바리, 굽다리 접시, 야마노테라식 토기, 유우스식 토기, 이타즈케식 토기, 조노코시식 토기, 스구식 토기, 붉은 간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창희, 천선행



설명

야요이 시대토기를 지칭한다. 조몬 토기(縄文土器)와 한반도 남부의 민무늬 토기를 모체로 하여 북부 규슈 지역에서 출현한다. 특히 일본 열도의 독자적인 벼농사 생활용 토기로 완성된 이타즈케Ⅰ식 토기(板付Ⅰ式土器)저장용 항아리(壺), 취사용 독(甕), 바리(鉢), 굽다리 접시(高杯) 등의 기종 구성을 갖추고 있다.

‘야요이식 토기’라는 명칭은 1884년에 도쿄부 혼고구 무코가오카 조개더미(向ヶ岡貝塚)에서 출토된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에서 유래한다. ‘야요이 시대’라는 명칭도 이 조개더미에서 비롯되었다. 1896년 ‘야요이식 토기’라는 명칭이 사용되어 왔으나, 1975년 사하라 마코토(佐原眞)의 제언에서부터 ‘야요이 토기’라는 명칭이 일반화되었다. 사하라는 토기의 특징으로는 ‘야요이식 토기’를 정의할 수 없으며, 야요이 시대의 정의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야요이 시대를 일본에서 식량 생산을 기초로 한 생활이 시작한 시대로 정의하여 ‘야요이 시대의 토기’를 ‘야요이 토기’라 부를 것을 주장했다. 이후 1978년 후쿠오카현 이타즈케 유적에서 조몬 토기가 출토된 논(水田)이 발견되면서 ‘야요이 시대’라는 시대명이 완연히 정착되었다.

야요이 토기는 지역마다 기준이 되는 토기의 편년이 다르다.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되는 야요이 토기의 대부분은 북부 규슈에서 반입된 것이거나 그 계통이다. 여기에서는 북부 규슈의 일반화된 야요이 토기의 편년을 토대로 대표 유적명에서 유래하는 형식명을 시간 순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북부 규슈를 대상으로 하는 까닭은 야요이 토기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고, 많은 개설서에서도 북부 규슈의 야요이 토기 편년을 기준으로 병행하는 각 지역의 야요이 토기를 위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야마노테라식 토기(山ノ寺式土器)는 규슈 지역 조몬 시대 만기 후엽 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군의 하나이다. 야마노테라 유적을 표지로 한다. 토기의 기형은 이전 시기에 해당하는 구로카와식 토기(黒川式土器)의 전통을 잇는다. 깊은 바리(深鉢), 얕은 바리(淺鉢) 외에 붉은 간 토기 항아리(赤色磨硏壺), 굽다리 접시가 새롭게 등장하여 야요이 토기의 기본 토기 구성을 갖추게 된다. 즉 야마노테라식 토기는 조몬 토기 전통과 붉은색을 띠는 소성 방법의 등장, 항아리와 굽다리 접시·붉은 간 토기 항아리 등 한반도로부터의 영향이 함께 확인된다. 따라서 규슈 지역은 조몬 시대 전통과는 다른 새로운 요소가 등장 하는 야마노테라식부터를 야요이 시대로 파악하였다. 또한, 유우스식 토기(夜臼式土器)에 선행하는 시기로 야요이 시대 조기의 토기가 되었다.

야마노테라식 토기는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확인되며, 오사유키 유적(長行遺跡)을 비롯하여 사가현의 나바타케 유적 9~12층, 후쿠오카현 마가리타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일찍이 야마노테라식을 유우스식과 병행하는 지역적 토기로 보기도 하였으나, 나바타케 유적의 층위와 출토 유물을 통해 유우스식보다 이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정착되었다.

유우스식 토기(夜臼式土器)는 일본 규슈의 조몬 시대 만기 후엽 돋을띠무늬 토기군의 하나로, 후쿠오카현 유우스 유적 출토 토기를 표식으로 한다. 야요이 시대 조기 북부 규슈의 야요이 토기를 대표하는 토기로 이전 단계인 야마노테라식을 계승한다. 기종은 깊은 바리·얕은 바리·항아리·굽다리접시로 구성된다. 깊은 바리의 경우 아가리 아래, 목과 몸통(頸胴部)의 경계, 혹은 아가리와 몸통 경계 모두에 돋을띠 골무늬(刻目突帶文)가 돌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이타즈케 유적 발굴을 통해 유우스식과 이타즈케 Ⅰ식이 공반되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후 우키쿤덴 조개더미 조사를 통해 유우스식 단순기가 설정되면서, 유우스식 단순기와 유우스식·이타즈케Ⅰ식이 공반하는 단계로 설정된다. 아울러 단순한 외형적 모방만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점토 띠를 안으로 경사지게 하여 쌓는(內傾接合技法) 등 한반도 남부의 도래인의 영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유우스식 토기는 이타즈케 유적에서 유우식과 수전, 탄화미, 목제 농구가 함께 출토되면서 야요이 시대 조기의 토기에 포함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기에 병행하는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 수도작의 요소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때문에 긴키 지역의 시가사토Ⅳ식 토기(滋賀里Ⅳ式土器), 세토나이해 지역의 마에이케식 토기(前池式土器) 등은 규슈의 유우스식에 병행하는 단계이지만 여전히 조몬 시대 범주에 포함된다.

이타즈케식 토기(板付式土器)는 후쿠오카현 이타즈케 유적 출토 토기를 표식으로 하는 야요이 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한반도 남부의 민무늬 토기 영향이 없어지고, 서일본 일대로 확산되는 야요이 토기의 원형이 확립된 토기로 볼 수 있다. 북부 규슈에서는 크게 전기 전반의 이타즈케Ⅰ식과 전기 후반의 이타즈케Ⅱ식으로 구분된다. 이타즈케Ⅰ식의 독은 직선적으로 벌어져 올라가면서, 아가리에서 바깥으로 짧게 벌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항아리는 아가리가 바깥으로 짧게 벌어지고, 둥근 몸통과 바닥은 원반상의 두꺼운 굽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목 부분과 몸통의 경계에 단이 진다. 이타즈케Ⅰ식의 분포 중심지는 겐카이나다(玄海灘) 연안 지역이다. 형식학적 세분에 의해 이타즈케Ⅰa식과 Ⅰb식으로 나뉜다. 이타즈케Ⅱ식의 독은 몸통이 Ⅰ식에 비해 약간 둥글게 부풀어 오르고, 아가리 바로 아래에 새김줄무늬(沈線文)를 돌린 것이 증가한다. 항아리는 몸통에서 목 부분으로 올라가는 경계가 희미해지고, 전체적으로 몸통이 길어진다(長胴化). 이 단계부터 지역성이 심화되어 항아리의 무늬, 시문 기법이나 종류가 다양해진다. 온가강(遠賀川) 서쪽 지역에서는 무늬가 없어지지만, 동쪽 지역은 문양이 성행한다. 형식학적 세분에 의해 이타즈케Ⅱa·Ⅱb·Ⅱc식으로 나뉜다.

조노코시식 토기(城ノ越式土器)는 후쿠오카현 온가군 조노코시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토기를 표식으로 하는 야요이 시대 중기 초두의 토기이다. 다른 토기 형식에 비해 출토량이 적고 존속 기간이 짧은 편이다. 전기말의 전통이 이어져 독의 기벽은 매우 두텁고 높은 굽이 특징적이며, 바닥은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아가리는 바깥으로 짧게 벌어지고, 단면은 역 ‘L’자 모양 혹은 단면 삼각형을 띤다. 항아리는 몸통과 목 부분의 경계가 명확해지며, 그 부분에 돌대가 돌아가기도 한다. 굽다리 접시나 바리의 아가리도 독이나 항아리와 마찬가지이다. 한반도 남부에서는 조노코시식부터 본격적으로 야요이 토기가 출토되기 시작한다.

스구식 토기(須玖式土器)는 후쿠오카현 가스가시 스구 유적을 표식으로 한다. 중기를 대표하는 토기 형식으로 중기전반의 스구Ⅰ식, 중기후반의 스구Ⅱ식으로 나뉜다. 스구Ⅰ식 토기는 기본적으로 조노코시식에서 발달하며 아가리가 내측으로 돌출하면서 호미 모양(鋤形) 아가리가 확립된다. 아가리 끝은 평탄하며 폭이 넓어진다. 독은 몸통이 부풀어 올라 몸통의 가장 넓은 부분이 조노코시식 보다 아래로 내려오며, 바닥은 약간 얇고 낮아진다. 아가리 바로 아래에 단면 삼각형의 돌대가 1조(條) 돌아가는 것이 나타난다. 항아리는 조노코시식에 비해 아가리가 크게 벌어지고, 목 부분에 도구로 누르고 문질러서 무늬 효과를 낸 암문(暗文)이 시문되기도 한다. 넓은 입 항아리(廣口壺)의 수량이 증가하지만 온가강 동쪽 지역에서는 호미 모양 아가리를 가진 긴 목 항아리(長頸壺)가 발달한다. 스구Ⅱ식 토기는 호미 모양 아가리가 더욱 얇고 길게 뻗어나가며, 내측으로의 돌출도 심해진다. 단면 ‘T’자 모양의 아가리로 부르기도 한다. 아가리의 단은 시간이 흐를수록 평탄면이 길어져 처지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기벽과 바닥의 두께가 얇아지고 바닥 지름이 커져 보다 안정적으로 세워지며, 바닥은 편평한 바닥에 가깝다. 독이나 항아리에 부착되는 돌대의 단면 형태는 ‘M’자 모양을 띠는 것이 증가한다. 독은 입지름과 몸통의 가장 넓은 부분의 위치가 가까워지고, 몸통의 형태는 더욱 곡선적으로 변화한다. 항아리는 스구Ⅰ식의 전통 아래 몸통이 길어지고, 아가리는 수평을 이루며 바깥으로 벌어진다. 붉은 간 토기는 다양한 기종 구성을 갖추며 의례용 토기로 정착한다.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된 야요이 토기 중 압도적인 양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