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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산룽춘 고인돌군[撫順 山龍村支石墓群] | |||
| 이칭별칭=산룡촌 지석묘군(撫順 山龍村支石墓群) | | 이칭별칭=산룡촌 지석묘군(撫順 山龍村支石墓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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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2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산룡촌 지석묘군(撫順 山龍村支石墓群)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중국 |
| 소재지 |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푸순시(撫順市) 푸순현(撫順縣) 주빙진(救兵鎭) 산룽촌(山龍村)의 남쪽 산자락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덮개식 고인돌, 돌무지돌방무덤, 대개석묘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하문식 |
설명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푸순시(撫順市) 푸순현(撫順縣) 주빙진(救兵鎭) 산룽촌(山龍村)의 남쪽 산자락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흘러 훈허강(渾河)으로 유입되는 주빙강(救兵河)의 서쪽 구릉에 해당하며 여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1980년대초 지표 조사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1990년 랴오닝성문물고고연구소(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푸순시박물관(撫順市博物館)이 조사하였다. 탁자식 고인돌 2기(1~2호)와 덮개식 고인돌(蓋石式支石墓) 3기(4~5호, 7~8호), 고구려의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지돌방무덤(積石石室墓) 1기(6호)가 조사되었다.
1호 무덤은 유적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받침돌(支石) 주변으로 돌이 쌓여 있어 일부만 드러난 상태였다. 덮개돌(上石)은 수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양쪽 받침돌 위에 2~3층의 쐐기돌을 얹었다. 무덤방(墓室)은 길이 2.5m, 너비 1.7m이며 바닥에는 넓적한 큰 돌을 깔았다. 동쪽 막음돌(閉塞石) 앞에는 작은 돌을 이용하여 길이 0.9m, 너비 0.55m 크기의 단(壇)을 쌓아 주목되었다. 껴묻거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2호 무덤은 북쪽 받침돌 일부가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벽은 받침돌과 막음돌을 세운 다음 뒤채움을 하여 대부분 묻힌 상태이며, 1호처럼 돌로 쌓은 단이 있다. 무덤방의 서북쪽에서 불탄 사람 뼈 및 석제 방추차, 홍갈색 토기 편과 숯이 발견되었다. 막음돌과 바닥돌, 남쪽 받침돌에 불탄 흔적이 남아 있어 무덤방 안에서 화장(火葬)한 것으로 추정된다.
4·5호 무덤은 전형적인 덮개식 고인돌과 다른 구조로, 대개석묘(大蓋石墓)로 명명되었다. 평지 위에 얕게 파서 정지하고 그 안과 주변부를 작은 깬돌(割石)과 막돌(塊石)을 사용하여 일정 범위만큼 시설하여 묘역을 조성한 후, 다시 그 중앙부에 얕은 무덤방을 만든 후에 큰 판돌(板石)을 덮개돌로 덮어 놓은 구조이다. 4호 무덤 덮개돌은 길이 2.4m, 너비 1.75~2m이다. 무덤방은 깬돌식의 돌널(石棺) 구조이며, 길이 1.5m, 너비 0.7m, 깊이 0.5m이다. 5호 무덤의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7m, 너비 0.9m이다. 무덤방은 깬돌식의 돌널 구조로, 길이 약 2m 너비 약 0.7m, 깊이 0.15~0.2m이다. 돌무지로 된 묘역 범위는 길이 4.7m, 너비 3.9m이다. 6호 무덤의 돌무지가 5호 무덤의 돌무지를 덮고 있어서 축조 시기의 선후 관계를 알 수 있다.
고인돌의 연대는 출토 유물이 적어 단정하기 어렵다. 1·2호는 탁자식 고인돌로 서주~춘추 시대에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 구조로, 전국 시대 조성되었다고 추정된다. 4·5호는 청동기 시대에는 확인되지 않는 구조로, 보통 대개석묘로 불린다는 점이 주목된다. 훈허강 유역보다 훈장강(渾江) 유역에서 기원전 2세기경에 확인되는 대개석적석묘(大蓋石積石墓)와 비슷한 구조라는 점에서 기원전 3세기경을 전후하여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산룽춘 고인돌은 돌무지가 시설되어 있는 점 등 이전 시기의 고인돌과 다른 구조를 나타내고 있어 늦은 시기 고인돌의 구조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