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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사토타바루 유적(平戸 里田原遺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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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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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상민
| 집필자=김상민
| 조성 시기=조몬 시대 만기~야요이 시대 후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일본 나가사키현(長崎県) 히라도시(平戸市) 다비라정(田平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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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2 판


사토타바루 유적(平戸 里田原遺跡)
기본 정보
동의어 히라도 사토타바루 유적, 평호 이전원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일본
소재지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県) 히라도시(平戸市) 다비라정(田平町)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수문, 구덩이, 붉은 간 토기, 독무덤, 수전 도작, 제방 시설, 넝쿨 바구니, 상자식 돌널무덤,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 내행화문경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상민



설명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県) 히라도시(平戸市) 다비라정(田平町)에 위치한다. 1972년부터 나가사키현과 히라도시교육위원회(平戸市教育委員会)가 40차례 조사하여, 저습지, 수전, 수문(水門), 제방 시설(護岸施設), 구덩이 등을 확인하였다. 유적은 해발 50m 내외의 분지에 입지한다.

저습지의 유물 포함층에서는 유우스식 토기(夜臼式土器)부터 조노코시식 토기(城ノ越式土器)가 출토되었는데, 이타즈케Ⅱ식 토기(板付Ⅱ式土器)가 가장 많다. 저습지는 조몬 시대 만기에서 야요이 시대 중기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저습지의 화분 분석을 통해 유우스식 토기가 성행하는 시기에 잣나무 속(屬)이나 가시나무 속 등 조엽수림(照葉樹林)의 화분이 급감하고 수전 잡초 속과 벼 속의 화분이 급증하는 것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유우스식 시기에 수전 도작 농경이 도입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유적의 남쪽에 흐르는 하천 주변에서는 야요이 시대 중기의 수전과 물을 가둬두기 위한 수문, 판재나 말뚝을 이용한 제방 시설, 유수(流水)를 이용하여 견과류를 보관하는 등의 다목적 구덩이 등 폭넓은 생산 활동을 보여주는 유구가 확인되었다. 또한 다양한 목제 농공구류를 비롯하여 국자, 넝쿨 바구니(藤籠)와 같은 생활 용구도 출토되고 있어 전문적인 공인 집단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한반도계 토기나 청동 제품 등 한반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구와 유물도 확인되었다. 현재 수전으로 이용되는 상부의 미고지(微高地)에는 3기의 고인돌이 남아있다. 고인돌은 10여 기가 있었으나 경작 과정에서 묻어버린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돌은 발굴 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구체적인 특징은 알 수 없지만 지표상에 드러난 1호 고인돌의 매장 주체부는 짧은 상자식 돌널무덤(箱式石棺墓)이다. 붉은 간 토기 편을 비롯한 한반도계 민무늬 토기가 출토되고 있어 고인돌의 기원은 한반도에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동쪽의 묘역에는 야요이 시대 중기에서 후기에 해당하는 독무덤(甕棺墓)이 존재하는데, 여러 꼭지 잔무늬 거울(多鈕細文鏡)내행화문경(內行花文鏡)이 부장되었다. 이를 근거로 야요이 중기 이후 지역 내에서 유력 수장이 등장하였다고 추정된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조사 1972년 None None 히라도시교육위원회(平戸市教育委員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