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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북방식 동검(北方式銅劍) | |||
| 이칭별칭=오르도스식 동검, 수원식 동검, 초원식 동검, 아키나케스 | | 이칭별칭=오르도스식 동검, 수원식 동검, 초원식 동검, 아키나케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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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강인욱 | | 집필자=강인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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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2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오르도스식 동검, 수원식 동검, 초원식 동검, 아키나케스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지역 | 동북아시아 북방 지역 일대의 초원 지역 |
| 관련 정보 | |
| 유적 | 양랑 유적 |
| 키워드 | 유목 문화, 비파형동검, 유병식 동검, 타가르 문화, 세이마-투르비노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강인욱 |
설명
동북아시아의 북방 지역 일대에서 유목 문화를 중심으로 사용했던 청동제 단검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동아시아는 크게 한반도와 중국 동북 지역의 비파형동검군, 중위안의 동주식검(東周式劍), 중국 서남부 지역의 파촉검(巴蜀劍), 양쯔강 하류의 백월검(百越劍) 등으로 구분된다. 이와 함께 오르도스고원 지역 일대에서 유목 문화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동검들을 흔히 북방식 동검이라고 통칭한다. 같은 말로 ‘오르도스식 동검(Ордосский бронзовый кинжал)’ ‘수원식 동검(綏遠拭銅劍)’이라고도 한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초원의 동검이 가장 먼저 알려진 곳이 오르도스고원 일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르도스 지역뿐 아니라 유라시아 전역에 널리 퍼져서 서쪽으로는 흑해 연안과 폴란드의 카르파트 분지까지 비슷한 동검이 분포한다. 따라서 지금은 오르도스 동검이라는 용어는 잘 쓰이지 않는다.
북방식 동검은 그 제작 방법의 특징이 조합식인 비파형동검과 다른 일주식(一鑄式)이라는 점에서 유병식 동검(有柄式銅劍)이라고도 하지만, 실제 비파형동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동아시아 동검은 유병식이다.
검병와 검신을 함께 주조하는 유병식 동검은 유라시아 초원 지역에서 거의 비슷한 형식이 널리 쓰인다. 따라서 ‘북방식 동검’이라는 말은 동아시아 북방 초원 지역에서 사용되는 초원식 동검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용어이다. 그래서 북방식보다는 ‘초원식 동검(草原式銅劍)’이 더욱 적당하다. 서구학계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유병식 검인 ‘아키나케스(acínăces)’로 불린다. 페르세폴리스의 궁전 벽화에는 페르시아와 사카인들이 무릎에 장착한 동검의 흔적으로 기원전 1000년기에 전 유라시아에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북방식 동검의 기원은 기원전 20세기로 올라간다. 중국 북방의 주카이거우 1046호 무덤에서 기원전 17세기경의 북방식 동검이 발견되었다. 비슷한 유경식 동검은 기원전 30세기에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시베리아와 중국 신장 지역으로 널리 확산된다. 이러한 확산의 과정은 소위 ‘세이마-투르비노(Сейминско-турбинская)’라고 하는 청동 제련 기술의 확산과 관련이 있다. 기원전 13세기 중국 북방 지역은 이러한 초원에서 유래한 카라수크계 동검이 널리 확산된다. 카라수크 동검은 전기(기원전 13~11세기)의 곡병형(曲柄形)의 동검과 후기(기원전 11~9세기) 직병형 동검(直柄形銅劍)으로 나뉜다. 이는 특정한 문화에 한정되지 않고 중국 북방 지역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다. 베이징과 랴오시 지역 일대로 보면 전기 곡병형의 동검은 차오다오거우 유형(抄道溝類型)에 해당한다. 후기는 바이푸 유형(白浮類型)이 대표적이다. 직병형 카라수크계 동검은 길이 30~40cm 정도의 비교적 긴 동검으로 검병 끝에는 버섯 머리형 장식 또는 짐승 머리형(獸頭形) 장식이 있으며 손잡이에는 홈이 파여 있다. 또 검격(劍格)은 돌기형으로 되어 있다.
북방계 동검은 기원전 1000년경이 되면서 스키타이 계통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중국 북방 일대로 널리 확산된다. 특히 20세기 초반에 오르도스식 청동기로 대표되는 중국 북방의 다양한 컬렉션으로 알려졌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중국 발굴 자료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북방식 동검은 유목 문화와 관련성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 북방 지역의 모든 성인 남성이 동검을 착용한 것은 아니다. 북방식 동검을 착용한 사람들의 비율을 무덤 출토 사례로 보면 허베이-베이징 지역의 위황먀오 문화(玉皇廟文化)와 닝샤 지역의 양랑 유적(楊郞遗址)의 경우 남성 기준 2:1~3:1의 비율을 가진다. 반면 오르도스 마오칭거우 문화(毛慶溝文化)에서는 4:1 정도 비율로 동검의 착용 비율이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북방식 동검이 실제 무기로서의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문화(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에서 발견되는 아키나케스검(=북방식)동검은 대부분 길이가 20㎝ 이내의 미니어처로 실제 사용이 어렵다. 유라시아 초원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Скифо-сибирская культура)에서 타가르 문화(Тагарская культура)를 제외하면 실제 무기로써의 기능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대신에 초원의 전사들은 기마 전사였기 때문에 단거리 육박전에 유리한 동검보다는 활과 투부(鬪斧) 등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전사들은 화려한 금박 목제 검집을 사용해서 무릎에 착용했다. 동검의 실제 기능보다는 그 상징성이 더 강조되었다. 반면 동검의 딸려 묻기(副葬) 비율이 높은 허베이 지역의 위황먀오 문화에서는 동검 이외에 투부와 같은 근거리전의 무기가 없다는 점도 동검의 비율과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이 북방식 동검은 막연하게 초원 지역의 유목 전사가 사용한 동검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서 동북아시아 청동기 시대에서 다양하게 교류하며 영향을 주었던 유목 문화를 상징한다. 그리고 북방식 동검은 각지역에 따라 다양한 제작과 사용 방법으로 각 사회에 도입되었다.
북방식 동검이 사라지는 시점은 강력한 철제 무기에 기반한 흉노 문화가 등장하는 기원전 3세기경이다. 이 시기 북방식 동검의 형태를 한 철검(鐵劍)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이후 흉노의 철제 장검(長劍)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하지만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는 이 시기에도 북방식 동검의 영향이 확인되었다. 조형검파두식(鳥形劍把頭飾)으로 통칭되는 그리핀식 청동 손잡이 장식은 세형동검 단계에도 널리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