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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호탄동 유적(晋州 虎灘洞遺蹟)
| 이칭별칭=진주 호탄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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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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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 974·975-1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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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송영진
| 집필자=송영진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 974·975-1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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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2008년~2009년 || 진주 가호동유적 || 2011 || 동서문물연구원
| 발굴조사 || 2008년~2009년 || 진주 가호동유적 || 2011 || 동서문물연구원

2026년 1월 20일 (화) 05:40 판


호탄동 유적(晋州 虎灘洞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진주 호탄동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 974·975-1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야외 화덕 자리, 함정, 기둥 건물터, 환호, 경작 유구, 무덤, 묘역식 고인돌, 송국리 단계, 돋을띠 골무늬 토기 단계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송영진



설명

경상남도 진주시 호탄동 974·975-1 일원에 위치한다. 가호 택지 개발 사업에 앞서 2008~2009년 조사하여, 집자리 26기, 구덩이 26기, 야외 화덕 자리 9기, 함정(陷穽) 9기, 기둥 건물터(高床建物址), 환호(環濠) 1기, 경작 유구(耕作遺構), 무덤 39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중앙을 관통하여 흐르는 가좌천이 남강과 합류하는 범람원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장방형, 방형, 원형으로 구분된다. 1호는 대형의 장방형으로 길이 13.8m, 너비 8.9m이며, 화재에 의해 폐기되었다. 화덕 자리는 중앙에 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 1개와 무시설식 화덕 자리(平地式爐址) 1개가 확인되었다. 장축 방향을 따라 편평한 돌을 이용한 2×5열의 기둥 받침돌(楚石)이 확인되며, 네 벽면에는 기둥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네 벽면에서는 저장 구덩이로 추정되는 둥근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겹아가리 톱니무늬 토기(二重口緣鋸齒文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장방형 돌칼(長方形石刀), 돌도끼, 간 돌살촉, 숫돌(砥石), 갈판(碾石) 등이 출토되었다. 2호는 대형의 장방형으로 길이 18.7m, 너비 9.9m이며, 내부 시설은 1호와 동일하게 확인되었다. 기둥 받침돌 중 일부는 기둥 구멍 속에 들어 있었다. 서쪽 벽면에는 기둥 구멍이 없고, 방을 분리하는 격벽 시설(隔壁施設)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돋을띠 골무늬 토기(刻目突帶文土器), 톱니무늬 토기(鋸齒文土器), 골아가리 토기, 그물추, 가락바퀴, 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石鏃),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숫돌, 갈판 등이 출토되었다. 방형, 원형 집자리는 총 24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 간 중복 조성(7호→6·8호, 15호→16호, 23호→24·25호)을 통해 방형이 원형 집자리보다 먼저 축조되었다. 집자리 중앙에는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새김 가로줄무늬 토기(橫沈線文土器), 슴베 간 돌살촉(一段莖式石鏃), 돌낫(石鎌), 돌칼, 대롱옥(管玉), 가락바퀴, 숫돌,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환호는 동서 방향으로 활 모양을 이루며 설치되었으며, 길이 50m, 너비 1.6m, 깊이 1.1m 내외이며, 너비 3.8m의 출입구가 확인되었다. 환호 안쪽에는 기둥 건물터가 배치되고, 묘역 고인돌은 바깥쪽에 축조되었다. 집자리는 내외에 모두 분포하며, 일부는 중복된 것도 있다. 이외에 수십 기의 구덩이와 야외 화덕 자리가 확인되며, 유적의 동쪽으로는 함정이 열을 이루며 배치되었다. 함정은 대부분 타원형이며, 단면은 ‘U’, ‘Y’자 모양이다. 바닥에는 살상용 나무 창의 흔적이 남아있다.

무덤은 묘역식 고인돌(墓域式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 돌뚜껑 움무덤(石蓋土壙墓) 등 총 39기가 조사되었다. 배치 형태는 장방형의 묘역식 고인돌 1호와 원형의 묘역식 고인돌 2·3호 사이에 묘역식 고인돌이 남북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주변과 바깥쪽에 돌널무덤과 움무덤이 축조되었다. 묘역식 고인돌은 경계 돌을 돌리고, 그 안쪽을 돌과 흙으로 쌓아올린 후 돌로 덮어서 마무리하였다. 무덤방은 판돌(板石)이나 목판으로 ‘ᄑ’자 모양으로 축조하였다. 1호에서는 간 돌검 편과 지름 6.1㎝의 청동 팔찌(銅釧)가 출토되었다. 2호와 3호는 서로 붙어 있으며, 3호가 먼저 축조되었다. 가장자리에는 둘레 도랑(周溝)이 확인되었다. 장방형인 6호 고인돌은 7·23호 돌널무덤보다 늦게 만들어졌으며, 무덤 주체부는 널무덤이다. 유물은 곱은옥(曲玉) 2점, 대롱옥 23점이 출토되었다. 무덤에서 대부분 옥 유물이 출토되는 특징을 보이는데, 둥근옥(丸玉), 곱은옥, 대롱옥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외에 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돌창(石槍), 돌살촉, 붉은 간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경작 유구는 생활 유구의 북동쪽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랑의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유적은 가장 높은 지대에 집자리와 구덩이, 야외 화덕 등이 배치되며, 내측으로 무덤 유구, 강가 쪽으로 경사면을 따라 경작 유구가 배치되어 있다. 생활 유구와 경작 유구의 경계에는 함정 유구가 열을 이루며 배치된 특징을 보인다. 대형의 장방형 집자리는 이른 시기인 돋을띠 골무늬 토기 단계에 해당하며, 그 외의 소형 집자리는 송국리 단계에 해당한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2008년~2009년 진주 가호동유적 2011 동서문물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