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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자개리 유적(唐津 自開里遺蹟)
| 이칭별칭=당진 자개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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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자개리 457(자개리 유적Ⅰ)과 515(자개리 유적Ⅱ)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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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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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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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나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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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 시기=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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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자개리 457(자개리 유적Ⅰ)과 515(자개리 유적Ⅱ)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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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8 판


자개리 유적(唐津 自開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당진 자개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자개리 457(자개리 유적Ⅰ)과 515(자개리 유적Ⅱ) 일원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구덩이, 돌널무덤, 도랑, 송국리 문화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나건주



설명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자개리 457(자개리 유적Ⅰ)과 515(자개리 유적Ⅱ) 일원에 위치한다. 2003~2004년 당진-대전 간 고속 도로 건설 공사에 앞서 2003~2004년 발굴 조사되었다. 자개리 유적Ⅰ에서 집자리 58기, 구덩이 12기, 미상 유구 3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자개리 유적Ⅱ에서는 집자리 22기, 구덩이 4기, 도랑(溝) 1기가 확인되었다. 면천면 일대는 넓은 평야가 펼쳐진 예산 지역과 구릉이 밀집하여 연결되는 서산 지역의 점이 지대이며, 유적은 해발 약 80m 내외의 구릉 지대에 입지한다. 자개리 유적Ⅰ에서 북서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의 독립된 구릉의 능선부에 자개리 유적Ⅱ가 위치한다.

자개리 유적Ⅰ에서는 다양한 구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로 구분해 보면 장방형 4기, 방형 50기, 원형 4기이다. 장방형 집자리 바닥에는 평지식 또는 구덩식 화덕이 설치되었는데 11·12호는 2개, 15·42호에서는 1개의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다른 유적의 장방형 집자리에 비해 화덕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든 양상이며, 42호는 규모에 비해 중앙부에 1개의 화덕만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장방형 집자리에서 출토된 유물의 양은 매우 빈약한 편이다. 11·42호에서 통슴베 돌살촉이 출토되고 구멍무늬 토기가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장방형 집자리의 축조 시기는 송국리 문화 단계에 근접한 시기로 추정된다.

원형 집자리 4기 중 일부는 벽면이 직선화되어 있고, 일부는 말각 방형에 가깝다. 7·8호는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었지만 양 끝의 기둥 구멍은 설치되지 않은 구조이다. 원형 집자리에서는 원시 두드림무늬 토기(原始打捺文土器) 편이 다수 출토되었다. 4기의 원형 집자리는 시기적으로 가까울 것으로 판단된다. 7·8·10호 3기의 집자리는 군집되어 분포하며, 1호 또한 7호 북쪽으로 26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동일 권역에 배치된 양상을 보인다.

자개리 유적Ⅰ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집자리는 바닥 중앙 구덩이 양 끝에 2개의 기둥 구멍이 설치된 방형 집자리이다. 이 외에도 화덕 자리, 기둥 구멍, 타원형 구덩이 등 다양한 내부 시설이 확인된다. 43호의 경우 기둥 구멍이 화덕 자리를 파괴하고 조성된 사례, 중앙 구덩이 없이 2주식 기둥 구멍만 설치된 사례, 반대로 중앙 구덩이만 설치된 사례, 하나의 기둥 구멍만 설치된 사례도 확인된다.

방형 집자리에서는 송국리식의 항아리 모양 토기깊은 바리 토기 등의 민무늬 토기와 통슴베 돌살촉, 삼각 돌칼, 홈자귀, 슴베 없는 돌살촉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징적인 유물로는 구멍무늬가 새겨진 송국리식 토기, 사용흔에 가깝게 홈이 희미하게 파여진 기둥 모양 돌자귀가 있다.

자개리 유적Ⅰ에서는 벼, 보리, 팥, 밀 등 다수의 탄화 곡물이 출토되었고 논과 밭에서 자라는 잡초들도 함께 검출되었다. 또한, 셰일을 이용한 석기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반제품, 부산물인 박편과 숫돌과 같은 제작 도구 등이 확인되었다. 대부분은 셰일을 이용한 돌살촉과 관련된 것으로, 찰절 기법과 양극 떼기 방식으로 석재를 가공한 후 여러 종류의 숫돌을 사용하여 돌살촉을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셰일제 석재에 대한 산지 분석 결과, 유적 주변 및 반경 10㎞ 이내에 분포 지역이 확인되지 않아 멀리 떨어진 산지에서 원석을 채취하여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개리 유적Ⅱ에서는 장방형 집자리 6기, 방형 집자리 5기, 원형 집자리 4기가 조사되었다. 장방형 집자리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능선의 정상부와 사면부에 입지한다. 길이 6.26~10.72m, 너비 2.12~3.44m로 가장 규모가 큰 16호는 길이 10.72m, 너비 2.62m, 깊이 0.29m이다. 내부에는 구덩식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벽 도랑 등의 시설이 확인되었다. 장방형 집자리는 능선 사면부에 입지하는데 길이 3.9~6.04m, 너비 1~3.2m 정도이다. 13호는 길이 3.62m, 너비 2.28m, 깊이 0.81m이며 내부에는 화덕 자리,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방형 집자리는 능선 정상부에 입지하는데 중앙 구덩이 양쪽 끝에 2개의 기둥 구멍이 설치된 것, 화덕 자리가 설치된 것이 있으며 길이가 3.04~4.6m이다. 원형 집자리는 능선 하단부에 입지하는데, 지름 4.44~6.22m로 내부에는 중앙 구덩이, 벽 도랑, 기둥 구멍 등의 내부 시설이 확인되며, 중앙 구덩이 양 끝에 기둥 구멍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출토 유물은 전체적으로 매우 빈약한 편이다.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구멍무늬 토기와 양날 도끼, 방형 집자리에서는 원시 두드림무늬 토기와 통슴베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원형 집자리 중 구덩식 화덕 자리가 설치된 19호에서 구멍무늬 토기가, 20호에서 턱 슴베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원형 집자리에서는 원시 두드림무늬 토기와 홈자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 양상은 자개리 유적Ⅰ과 유사한데 대체로 동일 시기로 판단된다.

두 유적 모두 구제 발굴의 특성상 고속 도로 부지에 국한되어 조사가 진행되었다. 유구 배치와 유적이 위치하는 구릉의 지형적 특징으로 보아 유적의 범위는 주변의 구릉지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자개리 유적은 송국리 문화 단계에 조성된 유적이다. 그동안 조사예가 드물던 당진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취락이 조사됨으로써 앞으로 이 지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 양상을 이해하는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