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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신서동 유적(大邱 新西洞遺蹟) | |||
| 이칭별칭=대구 신서동유적 | | 이칭별칭=대구 신서동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 1157·1188 일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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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유병록 | | 집필자=유병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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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6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대구 신서동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 1157·1188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돌널무덤, 도랑, 구덩식 화덕 자리, 고인돌, 송국리식 집자리, 슴베 돌화살, 손잡이 달린 토기, 돌 두름식 화덕 자리, 대구 신서 혁신 도시 B구역, 대구 신서 혁신 도시 B-1 3북구역 유적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유병록 |
설명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 1157·1188 일원에 위치한다. 혁신 도시 택지 개발로 인해 조사된 대규모 유적으로 두 개의 기관이 면적을 나누어 발굴 조사하였다. A구역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09~2010년 조사하여 집자리 1기, 돌널무덤(石棺墓) 1기, 원삼국 시대 및 고려~조선 시대 유구를 확인하였다. B구역은 2008~2010년 한국문화재재단이 조사하여 집자리 66기, 무덤 88기, 도랑(溝) 30기 및 원삼국~조선 시대 유구를 확인하였다. B구역은 다시 세부 구간을 나누었으며 집자리는 B-6구역, 무덤은 B-1·6구역에서 다수 확인되었다. 유적은 팔공산의 가지 봉우리 중 하나인 초례봉에서 금호강을 향해 형성된 선상지에 입지한다.
A구역 집자리는 장방형이며, 길이 4.76m, 너비 3m, 깊이 0.14m이며, 남서 쪽 모서리에 길이 5.1m의 도랑(外溝)이 뻗어 있다. 집자리는 화재로 벽체와 지붕이 함몰되어 화덕 자리 주변으로 두껍게 쌓여 있었다. 집자리 중앙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지름 0.47m의 구덩식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으며, 바닥은 불 다짐 하였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 바닥, 붉은 간 토기, 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B구역의 집자리는 B-1구역에서 9기, B-6구역에서 57기가 확인되었다. 무덤은 고인돌 덮개돌(上石), 고인돌, 돌널무덤으로, 구역별로는 1구역에서 52기, 3-남구역에서 3기, 4구역에서 2기, 5구역에서 9기, 6구역에서 21기, 7구역에서 1기가 확인되었다. 1구역과 6구역은 약 600m 떨어져 있어 구역 간 상관성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구역 사이에 3구역이 있지만, 돌널무덤 4기만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남쪽으로 집자리, 북쪽으로 무덤이 집중되어 있으며, 무덤은 일정 범위에 52기가 밀집 분포하여 특징적이다.
6구역의 집자리는 등고선 방향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져 군집을 이루며, 2기는 80m 떨어진 남동쪽 구릉지에 각각 40m 거리를 두고 위치한다. 집자리는 형태에 따라 세장방형 8기, 장방형 31기, 방형 16기, 원형 2기로 나뉜다. 세장방형은 장방형이 집중된 지역의 가장자리에 분포하고 있으며, 내부에는 돌 두름식(圍石式)화덕 자리 2기, 구덩식 화덕 자리 5기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 토기(短斜線口脣刻目土器),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 물고기 모양 돌칼(魚形石刀) 등 이른 시기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장방형 집자리는 길이가 4m 미만의 소형이 11기이며, 길이 방향도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는 동서 방향이 많다. 내부 화덕은 없는 것이 20기, 있는 것이 16기이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빗금무늬(斜線文), 격자무늬(格子文) 등 하나의 무늬만 새겨져 있다. 석기류는 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 배 모양 돌칼(舟形石刀) 등으로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방형 집자리 중 2기는 송국리식 집자리로 추정된다. 규모는 소형이 대부분이고, 내부의 화덕 자리는 없는 것이 8기, 있는 것이 6기이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바리 토기, 돌살촉, 부리 모양 석기, 숫돌 등이 확인되었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방형 2기, 원형 2기이다. 방형은 가운데 기둥 구멍만 두 개가 있고, 원형은 구덩이 바깥 양 쪽에 기둥 구멍이 있는 것과 기둥 구멍만 두 개 있는 것이 있다. 출토 유물은 그 수가 적지만, 대구 지역의 늦은 시기의 대표적 토기인 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가 확인되었다.
무덤은 구역별로 군집을 이루며, 덮개돌, 고인돌(덮개돌, 매장 주체부), 돌널무덤(매장 주체부)로 구분할 수 있다. 덮개돌은 1구역 4기, 6구역 1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받침돌(支石)을 놓고 상부에 덮개돌을 놓은 바둑판식(1구역 1~3호, 6구역)과 받침돌 없이 덮개돌만 올린 덮개식(1구역 4호, 5구역)이 확인되었다. 3·4구역 및 6구역의 일부 돌널무덤은 단독으로 확인되었으나, 후대 훼손으로 인접한 돌널무덤이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매장 주체부인 돌널무덤의 길이를 기준으로 1m 미만의 소형, 1~2m의 중형, 2m 이상의 대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1구역에서는 모든 종류가 확인되며, 3·4구역에서는 중형, 5·6구역은 중·소형이 확인되었다. 돌널의 축조 방법은 판돌을 세우는 방식(板石形垂積式)(14기), 판돌을 옆으로 뉘어서 쌓는 방식(板石形平積式)(21기), 판돌을 세우거나 쌓는 것을 섞은 방식(板石形混築式)(5기), 깬돌을 층층이 쌓는 방식(割石形平積式)(7기), 판돌과 깬돌을 섞어 쌓는 방식(混合形平積式)(1기) 등이 있다. 유적에서는 판돌을 세우는 방식과 판돌을 옆으로 뉘어 쌓는 방식이 많다. 바닥은 대부분 판돌을 전면에 깔았으며 1구역 25호는 잔자갈을 깔았고, 5·6구역의 8기는 시설없이 바닥면을 정지하여 사용하였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붉은 간 토기, 가지무늬 긴 목 붉은 간 토기, 홈 자루 간 돌검, 슴베 돌화살, 돌로 만든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돌화살은 한 유구에서 1~10점까지 출토되었으며, 1호 돌널무덤에서는 슴베 없는 삼각 오목 돌살촉(無莖式三角灣入石鏃)가 2점, 슴베 돌살촉 1점이 출토되어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연대는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A구역 집자리는 기원전 470~410년인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한다. B구역은 1구역 7호 집자리 2500±130 BP(보정 연대 기원전 650년), 8호 집자리 300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250년), 6구역 48호 집자리 306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330년)로 확인되었다. 신서동 유적은 대구 지역과 이를 벗어나 동쪽의 검단리 유형권으로 이어지는 곳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대구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 송국리식 집자리가 급격히 줄어드는 대신 장방형과 방형 집자리가 축조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B-1구역의 밀집된 무덤은 대천동 511-2유적, 상동 고인돌, 달성군 평촌리 유적과 같이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 무덤 공간이 계획적으로 조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한국고고학저널
- "혁신도시 예정지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의 무덤군", 2009 한국고고학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