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600-1555: 두 판 사이의 차이

한국고고학사전
dkamaster 600-1555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dkamaster 600-1555 자동 업로드 (entry_type=유적)
2번째 줄: 2번째 줄:


{{유적정보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세죽리 유적(寧邊 細竹里遺蹟)
| 이칭별칭=영변 세죽리 유적
| 이칭별칭=영변 세죽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평안북도 영변군 세죽리의 청천강가 하안 충적층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미송리-묵방리식 질그릇]], [[돌 두름식 화덕 자리]], [[돋을띠무늬 토기]], [[바리]], [[검은 간 토기]], [[굽다리 접시]], [[석기]]
| 키워드=[[집자리]], [[미송리-묵방리식 질그릇]], [[돌 두름식 화덕 자리]], [[돋을띠무늬 토기]], [[바리]], [[검은 간 토기]], [[굽다리 접시]], [[석기]]
| 시대=신석기 | 청동기 | 초기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북한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집필자=장호수
| 조성 시기=신석기 | 청동기 | 초기철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평안북도 영변군 세죽리의 청천강가 하안 충적층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2026년 1월 20일 (화) 05:35 판


세죽리 유적(寧邊 細竹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영변 세죽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북한
소재지 평안북도 영변군 세죽리의 청천강가 하안 충적층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집자리, 미송리-묵방리식 질그릇, 돌 두름식 화덕 자리, 돋을띠무늬 토기, 바리, 검은 간 토기, 굽다리 접시, 석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장호수



설명

평안북도 영변군 세죽리의 청천강가 하안 충적층에 위치한다. 1961년에 홍수로 무너진 강가의 지층에서 유적이 발견되어 1962~1963년에 2차례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4개 지구에서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집자리는 27기가 나왔다. 아래로부터 1문화층은 신석기 시대, 2문화층은 미송리-묵방리식 질그릇이 나오는 청동기 시대, 3문화층은 철기노끈무늬 토기(繩文土器)가 나오는 고대 문화층으로 고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 해당되는 2문화층에서 나온 집자리는 겹 놓인 관계에 따라 약간의 시기 구분이 가능하다. 겹 놓인 순서는 아래에서부터 27호→24호→23호 순이다. 가장 이른 시기의 집자리는 10·27·28호가 해당된다. 27호는 평면 방형의 움집으로 크기는 길이 3.7m, 너비 3.7m, 깊이 0.7m이다. 내부 바닥에는 기둥 구멍이 확인되지 않으며, 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가 있다. 중간 시기는 6·13·17·24호 집자리 등이 있다. 이들 집자리는 긴 벽이 남북으로 놓인 평면 장방형이며. 6호는 길이 8.3m, 너비 5m, 13호는 길이 6.75m, 너비 4.8m로 앞 시기에 비해 규모가 크다. 내부에는 기둥 구멍이 있고, 한 쪽에 치우쳐 돌 두름식 화덕이 있다. 가장 늦은 시기의 집자리는 4·20·23호 등으로, 4호는 길이 7.6m, 너비 5.25m, 깊이 0.3~0.35m, 23호는 길이 9.3m, 너비 5.1m, 깊이 0.2m이다. 내부에는 돌 두름식 화덕이 2기가 있고, 3열의 기둥 구멍이 있는 것도 있다. 특히 바닥 가운데는 낮고 가장자리는 0.01m 높이로 턱을 두었으며, 가장자리만 다짐 처리를 하지 않았다.

유물은 이른 시기의 집자리에서는 겹아가리(二重口緣)에 납작 바닥을 한 질그릇, 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들이 있다. 중간층에서는 바리(鉢), 검은 간 토기, 그리고 띠손잡이(帶狀把手) 달린 그릇이 나왔다.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집터에서는 묵방리식 질그릇과 회색 빛깔의 굽다리 접시(高杯)가 나왔다. 석기류는 창 끝(石槍), 간 돌살촉, 돌도끼(石斧), 반달 돌칼, 턱자귀(有段石斧), 홈자귀(有溝石斧), 달도끼(環狀石斧) 등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