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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석봉리 고인돌군[高興 石鳳里支石墓群] | |||
| 이칭별칭=고흥 석봉리 고인돌군 | | 이칭별칭=고흥 석봉리 고인돌군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 석봉리 산67-5 일원 | |||
| 성격=고인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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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이동희 | | 집필자=이동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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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5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고흥 석봉리 고인돌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 석봉리 산67-5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자루 간 돌검, 구슬옥, 가지무늬 토기, 그물추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동희 |
설명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 석봉리 산67-5 일원에 위치한다. 고흥-벌교 간 국도 27호선 확·포장 공사로 1999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해발 45m의 낮은 구릉상에 자리하는데, 31기가 남북 방향으로 3열을 이루고 있었다. 원래 조사 대상은 8기였으나 추가로 5기의덮개돌(上石)이 확인되고, 무덤방(墓室)은 덮개돌 있는 것 3기, 덮개돌 없는 것 9기로 구분된다.
덮개돌의 무게는 대개 10톤 미만이지만, 무덤방 없이 받침돌(支石)이 있는 1호는 평면 원형으로 지름 2.61~2.74m, 두께 2.47m이고, 무게 23톤에 이른다. 무덤방의 배치 상태는 대개 남동-북서 방향으로 3열을 이루고 있다. 무덤방은 12기 모두 돌널형(石棺形)으로 판돌(板石)을 세워 조립한 것과 판돌을 세우고 일부에 깬돌(割石)을 보강하여 축조한 것이 있다. 뚜껑돌(蓋石)은 2-1호에서만 확인되며, 바닥돌은 판돌을 이용한 경우와 맨바닥인 경우로 대별된다. 2-1호 무덤방은 덮개돌 없이 판돌 1매로 이루어진 뚜껑돌이 있다. 길이 0.74m, 너비 0.24m, 두께 0.2m로 판돌 1~2매를 세워 축조하고 바닥은 판돌 3매를 깔았다. 9호는 덮개돌은 길이 1.1m, 너비 0.92m, 두께 0.56m이며, 북쪽으로 약간 떨어져 위치한 무덤방은 길이 1.57m, 너비 0.43m, 잔존 깊이 0.1m이다. 무덤방의 짧은 벽은 깬돌을 세우고 긴 벽은 깬돌을 눕혀 축조하였으며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출토 유물은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6점, 구슬옥(丸玉) 1점, 대롱옥(管玉) 2점, 간 돌살촉 17점, 홈자귀(有溝石斧), 숫돌(砥石), 돌끌(石鑿) 3점 등 석기류와 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 1점,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편, 그물추 23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