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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4 판


사회 발달 단계론(社會發達段階論)
기본 정보
시대 청동기 시대
관련 정보
키워드 단계론, 진화론, 사회적 진화주의, 삼시대 체계, 신진화론, 사회 형식론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범철



설명

인류 사회가 공통적이고 일관된 단계를 거쳐 발달해왔다는 포괄적 논리 체계. 발달은 진보(進步, progression)의 개념보다는 변화 또는 진화(進化, evolution)의 개념을 내포하는바, 학술적 논의에서는 사회 문화적 진화(sociocultural evolution)의 일부로 다루어지고 있다.

인류 사회의 변화가 보편적인 단계를 가진다는 생각, 곧 단계론(stadial theory)은 그 연원이 깊다. 기록이 있는 한, 기원전 8세기 그리스의 헤시오도스(Hesiodos)가 인류사를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 영웅 시대, 철의 시대라는 단계로 나눈 것이 가장 오래다. 다만 진보가 아닌 쇠락(degeneration)이 그 변천의 방향이라는 것이 주목된다. 낙원(樂園)으로부터의 퇴출 또는 쇠락에 대한 관념은 17·18세기 계몽주의(啓蒙主義) 시대 이전까지 서구 사회에 팽배해 있었다.

인류 역사의 변천에 진보의 개념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은 프랑스 사회 철학자 몽테스키외(Montesquieu)의 3단계―야만(savagery)·미개(barbarism)·문명(civilization)― 구분·변천안을 필두로 한다. 그런데, 이 3단계설은 몽테스키외가 활동했던 당시보다는 19세기에 들어 크게 유행하게 된다. 미국의 모건(Lewis H. Morgan)은 인류학에서 19세기 진화론자의 입장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고대 사회(Ancient Society)』(1877)를 통해 3단계설을 적극적으로 계승하되, 야만과 미개를 각각 3기로 세분하여 7단계를 제시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모건이 그러했듯, 당시 영국 인류학을 이끌었던 타일러(Edward B. Tylor)도 3단계 발전 과정을 전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그들에게 ‘최종’ 단계인 문명은 분절적 문자, 도시, 집약 농경 등의 기술적 성취를 이룬 단혼제(單婚制) 등을 특징으로 한다. 사회 발달 단계에 대한 19세기의 이러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는 관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다윈(Charles R. Darwin)의 생물학적 진화론에 앞서 발표된 스펜서(Herbert Spencer)의 관점에서부터 분명해지며, 19세기 사회적 진화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집단이 동일한 궤적으로 진화한다는 단선적(單線的, unilineal) 진화이면서 그 정점에는 당시 유럽 사회가 있다고 전제하는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c)의 입장을 천명하게 된다. 그와 같은 서구 중심의 사고는 몽테스키외의 단계에서는 전제되지 않았지만 15~17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유럽 밖 집단과의 비교를 전제하지는 않았지만 1816년 톰센(Christian J. Thomsen)이 선사 시대 유물을 석기, 청동기, 철기로 분류하면서 제시된 삼시대 체계(Three Age System) 또한 구대륙 여러 나라의 편년 체계로 수용되면서 보편적인 단계론으로 자리 잡는다. 신석기 및 청동기 시대에 대해 즐문 (토기) 시대, 무문 (토기) 시대 등의 대안적 개념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한국 고고학의 선사 시대 편년 체계도 기본적으로 삼시대 체계를 준용하고 있다. 사회적 진화주의와는 다른 맥락에서, 생산수단과 생산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경제적 사회 구성체(social formation)의 변화를 ‘원시 공산제―고대 노예제―중세 봉건제―근대 자본주의’로 제시한 틀 역시 19세기에 제시된 사회 발달 단계론의 하나이다. 맥락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물 사관의 형성 과정에는 당시 사회 진화론자 특히, 모건의 영향을 받게 된다. 유물사관의 배경이 되는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가족·사유 재산·국가의 기원(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1884)은 『고대 사회』에 고무된 바 크다.

이념적 성향을 따라, 북한 고고학은 해방 이후 사적 유물론의 변천 단계에 의거하여 한국역사를 재구성한다. 1950년대 원시·고대의 사회 구성체 논쟁을 통해 청동기 시대에서 고조선(古朝鮮)을 분리하여 노예 소유자 사회로서 고대에 포함하게 된다. 더 나아가 고조선을 단계화함으로써 종래 청동기 시대에 속했던 유적들, 특히 동북한의 유적을 고대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편, 오히려 정치 체제 등 상부 구조가 사회 변화를 추동할 수도 있다는 신마르크스 주의(Neo-Marxism)의 논리가 쉽게 접목될 만함에도, 여전히 생산 수단과 생산력에 주목하는 속류 유물론(vulgar materialism)에 천착하는 모습도 보인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단선적 진화, 자민족 중심주의적 시각, 기술 발달에 대한 과도한 강조 등 19세기 사회적 진화주의가 표방하였던 사항들은 비판에 직면하게 되고 문화 변동에 있어 자생적 발달보다는 전파를 강조하는 비진화적 관점의 흥기를 촉발한다. 영국(비전문가들)의 극단적 전파주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역사적 전파주의, 미국 보아스(Franz U. Boas) 등의 역사 특수주의(historical particularism), 영국의 구조 기능주의(structural-functionalism) 등이 이 시기에 유행하게 된다.

이러한 반동적 움직임의 영향으로 인류사에 대한 진화론적 이해는 변화를 도모하게 된다. 20세기 전반 일률적인 진보보다는 상이한 환경에 대한 적응에 주목하는 다선적(多線的, multilineal) 진화를 표방하게 된다. 더불어, 사회 복합도의 상승이라는 보편 진화(general evolution)는 물론, 상이한 환경에 대한 적응과 함께 다종의 전파와 접촉에 의해 발생하는 특수 진화(specific evolution)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다. 흔히, 신진화론(Neoevolutionism)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조(思潮)에서 나타난 사회 형식론(社會形式論, societal typology)은 고고학에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서비스(Elman R. Service)의 안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서비스는 『원시 사회 조직(Primitive Social Organization)』(1962)을 통해 국가 조직을 갖지 않은 세계 각지의 민족지(ethnographic) 집단을 사회 정치적 구조와 경제 형태의 상관관계에 주목하면서 무리(band), 부족(部族, tribe), 수장 사회(首長社會, chiefdom)의 3가지로 분류하고, 『국가와 문명의 기원(Origins of the State and Civilization)』(1975)을 통해 세계 각지 원시 조직이 국가(國家, state)단계 조직으로의 진화를 설명함으로써, 4단계 변천을 상정하게 된다. ‘무리’는 25~100명의 부계 또는 부거제(父居制) 친족으로 구성되는데 수렵-채집 경제를 영위한다. ‘부족’은 혈연적 결속을 갖는 무리의 연합으로 동·식물의 사육과 재배 같은 생산 경제에 기반한다. 무리는 구석기 시대의, 부족은 신석기 시대의 가장 발전된 형태의 사회 조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수장 사회’는 앞의 두 단계에 비해, 확연한 양적 팽창―인구 규모 및 밀도의 증대―은 물론 친족 집단에 따른 불평등한 서열 곧 계층, 사회정치적 우두머리, 재분배 경제 체제 등의 발생이라는 현저한 구조적 차이를 보인다.

서비스의 안보다는 파급력이 약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프리드(Morton H. Fried)의 ‘평등 사회(egalitarian society)―서열 사회(ranked society)―계층 사회(stratified society)―국가(state)’ 안 역시 신진화론에 입각한 단계론으로 인정된다. 외형은 유사하지만 프리드의 각 단계는 대응하는 서비스의 단계보다 복합도가 높은 집단을 포괄한다. 뿐만아니라, 서비스가 사회 통합의 정도에 주목하면서 민족지 집단의 분류에 치중했던 반면, 『정치 사회의 진화(The Evolution of Political Society)』(1967)라는 제목에 드러나듯, 프리드는 계층화(stratification) 과정에서의 갈등에 주목하며 정치 체제의 진화를 설명한다. 취지나 구체적 분류 과정에서 서비스와의 차이를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프리드는 서비스의 ‘부족’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서비스의 설에 대한 적잖은 비판이 이어지는데, 특히 수장 사회에 집중된다. 얼(Timothy K. Earle)은 하와이(Hawai’i) 현지 조사를 통해 수장 사회를 판정하는 필수적 특성들, 특히 ‘재분배 경제’는 적어도 하와이의 맥락에서는 적합하지 않거나 허구적임을 지적한다. 한편, 「너무나 많은 유형(Too Many Types)」(1984)의 제목에서처럼 파인먼(Gary M. Feinman)과 나이젤(Jill E. Neitzel)도 범문화적 검토를 통해 ‘수장사회’라는 범주에 속하는 집단들이 형태상 엄청난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수장 사회’라는 부류 또는 단계가 무두 평등(無頭平等)의 사회와 국가의 사이에 있는 다양한 집단을 규정한 데서 오는 태생적 한계라는 인식도 널리 퍼져간다. 그 맥락에서 ‘중간(intermediate)’ 또는 ‘중위(middlerange)’의 범주로 다루자는 주장이 적잖은 동조를 얻기도 한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의 분류·단계론은 확대·재생산되기도 한다. 렌프류(Colin Renfrew)는 1974년 「생계 경제를 넘어서(Beyond a Subsistence Economy)」를 통해 신석기시대 영국 웨섹스(Wessex) 사회를 대상으로, ① 서열화된 사회, ② 수장에 의해 조직된 생산물 재분배 경제, ③ 인구 밀도의 증대, ④ 전체 인구 규모의 증가, ⑤ 개별 취락 규모의 확대, ⑥ 생산성의 증대, ⑦ 영역 경계의 명확화, ⑧ 사회적 지위의 증대를 수반하는 사회 통합도의 증대, ⑨ 사회·신앙·경제적 활동을 조율하는 중심지, ⑩ 다양한 사회적 목적에 부합하는 의식과 의례 증가, ⑪ 사제(司祭) 집단의 부상(浮上), ⑫ (재분배를 촉발할) 다양한 생태적 적소들과의 관계, ⑬ 지역별 또는 생태 영역별, 협업적 노력으로 개별 기술을 동원하는 작업을 통한 전문화, ⑭ 농업 기반 시설 및/또는 사원, 의례 시설을 위한 축대, 피라미드 등의 축조를 위한 공공 노동력의 조직화 및 그 발달, ⑮ 수공생산 전문화의 향상, ⑯ 수장 사회들의 부침(浮沈)에 관련된 영역 확대의 가능성, ⑰ 내부 투쟁 감소, ⑱ 비경제적 분야에서 작동하는 영속적 지도권에 관련된 사회 내 개인 및 집단 간 불평등, ⑲ 높은 지위를 표시하는 복장과 장신구, ⑳ 합법적 강제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진정한 정부 조직의 부재 등 수장 사회에 적용될 20가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고고학적 맥락에서의 활용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수장 사회 자체를 세분―예를 들어, 단순 대(對) 복합 수장사회―함으로써, 개념을 세련화하고자 한 노력도 잇따른다. 더 나아가 렌프류와 반(Paul Banh)은 『고고학: 이론, 방법 및 실행(Archaeology: Theories, Methods & Practice)』에서 이동성 수렵 채집 집단(mobile hunter-gatherer group) 분절 사회(segmentary society), 수장 사회(chiefdom), 국가(state)의 범주를 설정하고 있다. 이는 서비스의 안을 기초로 삼고 있는데, 몇몇 비판을 의식하고 무분별한 통시적 적용을 경계하면서도 분류 체계로서의 기여를 인정하고 있다.

서비스의 안은 한국 선사 시대 사회 조직을 복원하는 작업에도 적극 수용된다. 특히, ‘chiefdom’을 ‘군장(君長) 사회’, ‘족장(族長) 사회’, ‘추장(酋長) 사회’ 등으로 번역하면서 청동기 시대 및 삼한(三韓) 사회의 성격을 이해하고자 했다. 역사 기록에 나타나거나 친숙한 명칭을 사용하고자 한 토착화의 노력은 인정되지만 범문화적 보편성 파악을 목표로 했던 사회 형식론의 기본적 취지에는 배치된다. ‘chief’는 보편적인 의미의 우두머리, 곧 수장(首長)으로 그 역할 분야가 한정되지 않는다. 세계 다른 지역에도 수장을 일컫는 명칭이 문헌 기록에 나타나지만 해당 사회를 지칭할 때, 특화된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한편, 이론적 배경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나 기계적 기준 적용 등이 한계로 지적되면서, 한국 선사 시대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에 부합할 측면들을 부각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당초 의도와는 달리 1990년대 이후 논의가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한국 고고학의 상황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재 사회 형식론에 입각한 단계적 변화를 고전적 저작에 따라 설명하는 노력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성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세계 여러 사회들 간 상사·상이성에 대한 정보는 당초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론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특정 사회가 특정 부류에 속하는지 여부를 판정하고자 하지는 않지만, 연구의 대상이 된 사회가 대략 어떤 단계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정도만 잠정하고 어떤 기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떠한 방향으로 사회 복합화를 진행시키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지의 연구 결과를 비교론의 관점에서 고찰하여 상사·상이성을 발생시키는 배경을 탐색하는 이른바 ‘복합화 과정의 비교 고고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