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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빛가람동 유적(羅州 빛가람洞遺蹟) | |||
| 이칭별칭=나주 빛가람동 유적, 도민동 유적, 신도리 도민동 유적, 신도리 신평 유적, 매성리 저성 유적 | | 이칭별칭=나주 빛가람동 유적, 도민동 유적, 신도리 도민동 유적, 신도리 신평 유적, 매성리 저성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전라남도 나주시 빛가람동 42-143·273·310·330·348-4·814·900-66 일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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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박수진 | | 집필자=박수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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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4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나주 빛가람동 유적, 도민동 유적, 신도리 도민동 유적, 신도리 신평 유적, 매성리 저성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시 빛가람동 42-143·273·310·330·348-4·814·900-66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송국리식 집자리, 송국리 문화,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 삼각 오목 돌살촉, 짧은 빗금무늬 토기, 바리토기, 민무늬 토기, 돌칼, 달도끼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박수진 |
설명
전라남도 나주시 빛가람동 42-143·273·310·330·348-4·814·900-66 일원에 위치한다. 빛가람동은 나주시 금천면 광암리·동악리·석전리·월산리 일부와 산포면 매성리·송림리·신도리 일부를 편입하여 설치된 동이다. 광주·전남 공동 혁신도시 건설 부지에 포함되어 2010~2011년에 조사가 진행되었다. 여러 유적 가운데 매성이 저성·신도리 완도촌·도민동Ⅰ·도민동Ⅱ·신평Ⅰ·신평Ⅱ·상야 등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43기, 구덩이 5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대체로 해발 50m 이하의 충적지와 구릉지에 해당하며 북쪽과 동쪽으로는 지석천의 지류인 산포천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영산강의 지류인 영산천이 흐른다.
매성리 저성 유적(빛가람동 42-143 일원)은 빛가람동 북쪽 경계에 위치한다. 3개 지구로 구분되며 청동기 시대 유구는 집자리 3기, 구덩이 2기 등이 조사되었다. 1지구 집자리는 해발 34m의 구릉 정상부에서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고, 내부에서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저장 구덩이,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 바닥과 퇴적토에서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민무늬 토기 편, 그물추, 삼각 오목 돌살촉(三角灣入石鏃), 석재 편 등이 출토되었다. 4호와 7호 구덩이에서는 민무늬 토기 편, 미완성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2지구 집자리는 해발 32m의 구릉 사면부 끝자락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이며 내부에서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집자리 바닥과 1·10호 구덩이에서 민무늬 토기 편과 돌칼(石刀), 돌살촉(石鏃) 등이 출토되었다. 3지구 집자리는 해발 28.5m의 구릉 사면 끝 자락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이며 내부에서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집자리 바닥과 퇴적토에서 골아가리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口脣刻目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편, 짧은 빗금무늬 토기(短斜線文土器) 편, 민무늬 토기 편, 석재편, 미완성 석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저성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1지구 장방형 집자리들은 275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885년), 292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30년)로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인 기원전 10~9세기,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된 3지구 1호 집자리에서는 238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465년)의 값이 측정되어 송국리 문화 단계인 기원전 5~4세기로 추정된다.
도민동 유적(빛가람동 273·310 일원)은 도민동 유적Ⅰ(4구역)에서 집자리 6기, 도민동 유적Ⅱ(2구역)에서 집자리 24기가 확인되었다.
도민동 유적Ⅰ(빛가람동 310 일원)은 해발 25~40m의 구릉이 발달한 지역으로 구릉 사이에는 곡간지가 형성되어 있다. 조사 지역은 4개 지구(1·2·3·4지구)로 구분하였고, 이를 다시 A·B·C지구로 세분하였기 때문에 총 13개 지구로 구분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1A지구와 2A·B지구에서 6기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설치된 송국리식 집자리다.
1A지구는 해발 22~31m 구릉의 남쪽 말단부에 해당한다. 집자리 5기는 해발 30~31m의 구릉 상부에 위치하는데, 윗면이 대부분 깎여 나가 바닥만 남아 있거나 절반 정도 파괴된 상태이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과 말각 방형이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하다. 내부 시설로는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타원형 구덩이의 양 끝에는 기둥 구멍이 각각 1개씩 파져 있다. 4호 집자리는 남서쪽 바깥 도랑(外部溝)이 있다. 5호 집자리는 벽 가 도랑과 작은 기둥 구멍이 있다. 벽 도랑은 집자리 북서쪽 짧은 벽 쪽에만 설치되어 있으며 남서쪽 끝 부분에 있는 작은 기둥 구멍과 연결되어 있다. 집자리 바닥이나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서 토기류와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토기는 집자리 바닥이나 벽 아래에서 출토되었는데, 주로 민무늬 토기 편들이다. 석기는 타원형 구덩이 바닥이나 구덩이 주변에서 주로 확인되는데, 가락바퀴, 돌살촉, 돌도끼, 돌검 편, 망치돌, 석재, 미상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2지구는 도민동 마을의 서쪽과 북쪽에 있는 해발 40m 정도의 구릉에 위치한다. 28호 집자리는 조사 지역의 동쪽 사면에 위치하며 평면 형태는 방형계이고, 장축 방향은 남북으로 등고선과 나란하다. 내부 시설로는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미완성 석기와 석재 격지(剝片)가 출토되었다.
도민동 유적Ⅱ(빛가람동 273 일원)은 경사가 완만한 해발 20~40m정도의 구릉 지역이다. 집자리들은 해발 39~40m의 북서쪽 구릉 정상부와 해발 37~39m의 남서쪽 구릉 사면부에서 24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원형, 방형, 말각 방형으로, 형태를 알 수 없는 6기를 제외한 나머지 18기는 원형 4기, 방형 1기, 말각 방형 13기이다. 내부 시설로는 타원형 구덩이,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배수구,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다. 타원형 구덩이와 그 주변에서 숫돌(砥石)과 다량의 석기 격지(剝片)들이 출토되어 타원형 구덩이 주변에서 석기 제작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23호 집자리는 벽 가의 도랑이 타원형 구덩이로 연결되어 있어 물을 모으기 위한 집수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원형 구덩이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집자리의 장축과 같다. 화덕 자리는 21호 집자리의 바닥 중앙에서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확인되었다. 별다른 시설없이 바닥을 파내어 사용한 무시설식으로 바닥이 불에 타 단단하게 소결(燒結)되었다. 벽 도랑은 15호와 23호 집자리에서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지름 0.1~0.2m 정도로 집자리 바닥에 비슷한 크기의 기둥 구멍이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어 집자리에 세워졌던 보조 기둥 구멍들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로 구분된다. 토기는 대개 일부분만 남아있으며 대부분 민무늬 토기 편이다. 석기는 돌살촉, 돌끌(石鑿), 돌칼(石刀), 달도끼(環狀石斧), 숫돌, 망치돌, 그물추 등으로 다양하다. 돌살촉은 통슴베가 주를 이루며, 돌칼은 평면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도민동 유적Ⅱ-4·11·21호 집자리의 바닥에서 채취한 숯(木炭)의 방사성 탄소 연대가 기원전 10~5세기로, 도민동 유적Ⅰ-2지구 28호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가 2420±50 BP로 측정되었으며, 대부분의 집자리들이 송국리식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그러나 도민동 유적Ⅱ-21호 집자리는 방형 집자리에 화덕이 설치되어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특징을 가진다.
신도리 신평 유적(빛가람동 330-5·814 일원)은 Ⅰ·Ⅱ 유적으로 구분되며 집자리 7기가 조사되었다.
신평 유적Ⅰ(빛가람동 330-5 일원)은 북쪽 구릉 및 남쪽에 형성된 곡간부, 동쪽 곡간부, 남쪽 구릉으로 구분되며 청동기 시대 집자리 5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1호 집자리는 해발 35.4m의 구릉 정상부에서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이며 장축 방향은 남북이다. 내부 시설로는 바닥 중앙에서 양쪽 끝에 기둥 구멍이 하나씩 파져 있는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돌살촉(石鏃), 미완성 돌살촉, 미완성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2호 집자리는 해발 35.8m의 북서쪽 구릉 정상부에 단독으로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방형이며, 장축 방향은 남북이다. 내부 시설로는 바닥 중앙에서 양쪽 끝에 기둥 구멍이 하나씩 파져 있는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민무늬 토기 바리, 갈판(碾石), 미완성 돌살촉이 출토되었다. 3호 집자리는 북서쪽 구릉 정상부에서 위치한다. 경작으로 인해 삭평된 단애면에서 확인되어 집자리의 남벽이 모두 유실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계로 추정되며 장축 방향은 동서이다. 내부 시설로는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미완성 석기, 미완성 돌살촉, 바리 편 등이 출토되었다. 4호 집자리는 해발 30.2m의 완만한 구릉 경사면에 단독으로 분포한다. 경사면 아래쪽은 유실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계로 추정된다. 내부 시설로는 바닥 중앙에서 양쪽 끝에 기둥 구멍이 하나씩 파져 있는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바리, 돌살촉,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5호 집자리는 남동쪽 구릉의 동쪽사면에서 확인되었다. 남벽 쪽이 삭평되어 절반 정도만 남아 있다. 평면 형태는 방형계로 추정되며, 장축 방향은 동서이다. 내부 시설로는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미완성 석기, 용도미상 석기, 민무늬 토기 바닥 편 등이 출토되었다.
신평 유적Ⅱ(빛가람동 814 일원)는 해발 22~40m 정도의 저평한 구릉이 발달한 지역이다. 발굴 조사는 A·B·C지구로 나누어서 실시하였으며 청동기 시대 집자리 2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A지구 10호와 11호 집자리로, 해발 32.3~32.4m의 서쪽 구릉 정상부 10m 간격을 두고 분포한다. 상부는 대부분 삭평되었으며 평면 형태는 말각 방형이고, 장축 방향은 남북이어서 등고선과 나란하다. 크기는 길이 3.58~3.6m, 너비 3.18~3.42m, 남은 깊이 0.1~0.2m이다. 내부 시설로는 바닥 중앙에서 양 쪽 끝에 기둥 구멍이 파져 있는 타원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민무늬 토기와 숫돌(砥石)이 출토되었다.
상야 유적(빛가람동 348-4일원)에서는 해발 31m의 구릉 정상부에서 구덩이 1기가 확인되었다. 길이 2.4m, 너비 1.5m, 깊이 0.07m이며,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빛가람동 유적은 도민동·신평·저성 유적을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유적으로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집자리 구조, 출토 유물 특징 등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송국리 문화 단계까지 이어지며 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