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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북촌리 유적(濟州 北村里遺蹟)
| 이칭별칭=제주 북촌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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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275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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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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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오원홍
| 집필자=오원홍
| 조성 시기=기원전 10세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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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275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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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4 판


북촌리 유적(濟州 北村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제주 북촌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275 일원
관련 정보
성격 주거유적
키워드 바위그늘 유적, 구멍무늬 토기, 간 토기, 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오원홍



설명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275 일원에 위치한다. 1973년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1986년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유적은 해안에서 약 0.6㎞ 올라온 완만한 구릉상에 위치하며 해발 20m 정도이다.

유적은 ‘고두기 언덕’이라 부르며 용암 동굴의 천정부가 무너져 최대 지름 50m의 함몰지가 형성된 바위그늘 유적(岩陰遺蹟)이다. 바위 그늘의 정면 길이는 11m, 입구에서 안쪽까지의 거리는 3m, 맨바닥에서 천정까지의 높이는 2m, 넓이 30㎡ 정도이고 입구는 정남쪽으로 트였다.

조사 결과, 5개의 층위가 확인되었다. 그 중 청동기 시대 문화층에 해당하는 4층에서 조개껍데기(貝殼) 편과 함께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간 토기(磨硏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은 유물과 문화층의 양상을 종합해볼 때 장기적인 주거 생활보다는 일시적인 집자리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방사성 탄소 연대는 신석기 시대 문화층에서 수습한 조개 편 덩어리가 2920±25 BP로 확인됨에 따라, 청동기 시대 문화층인 4층의 연대는 기원전 10세기 이후로 판단된다.

지정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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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북촌리선사주거지유적 (北村里先史住居址遺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