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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문흥리 고인돌군[平壤 文興里支石墓群] | |||
| 이칭별칭=평양 문흥리 고인돌군, 평양 문흥리 지석묘군 | | 이칭별칭=평양 문흥리 고인돌군, 평양 문흥리 지석묘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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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장호수 | | 집필자=장호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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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3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평양 문흥리 고인돌군, 평양 문흥리 지석묘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평양직할시 강동군 문흥리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오덕형, 침촌형, 돌도끼, 간 돌검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평양직할시 강동군 문흥리에 위치한다. 문흥리에서 채당골로 가는 도로 우측에 문흥벌을 향하여 구릉이 여섯 가닥으로 뻗어 있는데 구릉마다 2~5기 정도씩 모두 20여 기의 고인돌이 있고, 그 가운데 구릉 마루에 있는 8기를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은 오덕형과 침촌형이 서로 뒤섞여 있는데, 덮개돌(上石)은 큰 것이 길이 6m 정도이며, 길이 2m 안팎의 작은 것들이 많다. 2호 고인돌은 탁자식으로 무덤방(墓室)은 받침돌(支石)과 그 위에 올려 놓은 덮개돌만 있고 막음돌(閉塞石)은 깨어져 옆에 널려 있는 상태이다. 덮개돌은 길이 4.1m, 너비 3m, 두께 0.3m로 대형이며, 받침돌은 덮개돌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7° 정도의 안기울임을 주어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남북의 막음돌은 없다. 받침돌 둘레에는 주변 지역보다 0.4m 높게 터를 돋우어 묘역 시설(墓域施設)을 만들었다. 3호 고인돌은 2호에서 북쪽으로 9m 떨어져 있다. 덮개돌은 깨어져 없어지고 서쪽 받침돌과 남쪽 막음돌만 흙무지 위에 드러나 있다. 받침돌과 막음돌을 세우기 위해 0.7~0.8m 깊이로 기초 홈을 파고 그 공간에 돌로 쐐기를 박아 고정하였으며, 막음돌 밖에 문돌을 덧세운 구조이다. 무덤방은 길이 2.1m, 너비 1.8m, 높이 2.1m로 평면 ‘ㅍ’자 모양이다. 바닥에는 납작한 판돌(板石)을 깔아 고인돌 주변 지역과 거의 같은 높이로 만들었다. 고인돌 언저리에 돌덩어리를 깔아 놓은 묘역 시설이 있다. 바닥에서 돌도끼와 사람의 손가락 뼈가 10여 개 나왔다. 3호 고인돌은 서북한 지역의 대형 고인돌인 오덕리 1호, 관산리 1호, 로암리 1호와 맞먹는 크기이다. 4호는 침촌형으로 덮개돌은 길이 6m, 너비 2.8m, 두께 0.28m로 문흥리 유적에서 가장 큰데, 막돌을 여러 겹 쌓아 만든 무덤방은 잔존 길이 1.2m, 너비 2m, 높이 0.4m이다. 유물은 간 돌검 1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