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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문호리 유적(楊平 汶湖里遺蹟)
| 이칭별칭=양평 문호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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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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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유태용
| 집필자=유태용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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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3 판


문호리 유적(楊平 汶湖里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양평 문호리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관련 정보
성격 복합유적
키워드 고인돌, 집자리, 돌무지 무덤, 움무덤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유태용



설명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 위치한다. 1972년에 실시된 팔당·소양댐 건설에 따른 북한강 수몰 지구에 대한 학술 조사의 일환으로 발굴되었는데, 경희대학교박물관에서 고인돌 4기, 집자리 1기와 그 밖에 백제 무덤으로 추정되는 방형의 돌무지무덤(積石墓)을 확인하였다. 양수리에서 북한강 쪽으로 약 4.5㎞ 올라가면서 오른쪽에 발달된 자연 제방 위에 유적이 길게 분포되어 있다.

고인돌은 4기 중 1호와 2호만을 조사하였는데, 1호는 탁자식(卓子式)이었으나 덮개돌(上石)은 이미 파괴되었고, 길이 1m, 너비 1m 정도의 받침돌(支石) 3매만 남아 있다. 받침돌로 이루어진 지상 무덤방(墓室)은 길이 1.6m, 너비 0.73m이며, 간 돌도끼, 반달돌칼,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등이 반파 상태로 출토되었다. 2호는 덮개식(蓋石式)으로 1호에서 서쪽으로 약 2m의 거리를 두고 축조되어 있다. 덮개돌은 길이 2m, 너비 1.8m, 두께 0.2m인 규암질(硅岩質)의 판돌형(板石形)으로 윗부분에는 크고 작은 42개의 알 구멍(性穴)이 파여져 있다. 덮개돌 아래에는 특별한 받침돌이 없이 약 2m의 범위에 장방형으로 강자갈을 깔아서 묘역墓域을 조성하였다. 강자갈로 이루어진 묘역 아래에 움무덤(土壙墓)이 조사되었으며 길이 1.8m, 너비 0.86m, 깊이 0.68m이다. 슴베 간 돌살촉 3점이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심하게 파괴되어 정확한 구조가 파악되지 않으며, 숫돌(砥石)그물추가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