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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무거동 옥현 유적(蔚山 無去洞玉峴遺蹟)
| 이칭별칭=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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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 488-11·13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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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구석기 | 청동기 | 조선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상길
| 집필자=이상길
| 조성 시기=구석기 | 청동기 | 조선
| 성격=생활유적
| 크기=420,781.4㎡
| 소재지=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 488-11·13 일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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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 1998년 4월 23일~1999년 5월 15일 ||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 || 2015 || 경남대학교박물관 | 부산대학교박물관
| 발굴조사 || 1998년 4월 23일~1999년 5월 15일 ||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 || 2015 || 경남대학교박물관, 부산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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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3 판


무거동 옥현 유적(蔚山 無去洞玉峴遺蹟)
기본 정보
동의어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 488-11·13 일대
관련 정보
성격 생활유적
키워드 , 집자리, 도랑, 돌날석기, 민무늬 토기, 간 돌검, 돌살촉, 붉은 간 토기, 조갯날 돌도끼, 반달 돌칼, 그물추, 가락바퀴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이상길



설명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 488-11·13 일대에 위치한다. 무거동 옥현 택지 개발 사업으로 1998~1999년 경남대학교박물관과 밀양산업대학교박물관이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여, A구역에서 집자리 2기, B구역에서 집자리 10기, 도랑(溝) 1기, C구역에서 집자리 67기, 구덩이 4기, 논 및 수로(水路) 및 구석기 시대 유물 포함층과 삼국·조선 시대 유구도 확인되었다. 유적은 태화강으로 유입되는 소하천변의 동서로 길게 뻗은 평탄한 구릉(해발 35m 정도)과 그 아래의 평지에 입지하며, 구릉 위에는 집자리, 그 아래 저지대에는 논이 위치한다. 또한 구릉의 정상부와 그 주변 사면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돌날 석기(石刃石器)도 다수 채집되었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으로 구분된다. C-61호는 길이 7.95m, 너비 3.35m, 깊이 0.12m로 가장 크며, C-54호는 길이 2.5m, 너비 2.36m, 깊이 0.15m로 가장 작다. 내부 시설은 벽 도랑(壁溝), 배수구, 화덕 시설, 기둥 구멍 등이 있다. 벽체는 먼저 홈을 파고 판자를 수직으로 세웠으며, 벽체를 지탱하기 위해 배수구 내에 작은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기도 하였다. 화덕 시설은 방형 집자리는 중앙에 1기, 장방형은 2기가 설치되었고, 모두 바닥을 얕게 판 구덩식(竪穴式)이다. 내부 기둥은 장방형은 3~5개의 기둥이 2~3열로 배치되었고, 방형은 2×2열이 기본이며, 2×1열 또는 기둥 구멍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유물은 구멍무늬(孔列文),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가 새겨진 민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간 돌검, 돌살촉,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끌(石鑿), 배 모양(舟形), 반달 돌칼, 그물추, 가락바퀴 등이 있다.

논은 청동기 시대~현재까지 계속 기능한다. 청동기 시대의 논은 미지형(微地形) 경사를 따라 단(段)을 이루면서 작게 구획되어 있으며, 형태는 방형, 장방형, 부정형 등이다. 지형의 경사가 상대적으로 급한 구릉사면 말단부 가까이에서는 부정형이며 단위 면적도 적다. 논의 단위 면적은 0.78~12.72㎡ 전후의 소구획 논이다. 논둑은 너비 16~52㎝, 높이 1.4~6㎝ 내외이며, 둑의 단면은 대(臺) 모양 또는 반원형이다. 논 바닥에서는 농경구 흔적인 조상 흔(條狀痕)이나 발자국, 경작 도구 흔적, 기둥 구멍, 주적(株跡) 등이 확인되었고, 논둑을 끊어 만든 수구(水口)도 몇 군데에서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논 바닥에서 구멍무늬 짧은 빗금무늬가 새겨진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편, 그물추,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수로는 구릉과 골짜기의 경계 지점에 설치되었으며, 길이 45m이고, 너비 2.6m, 깊이 0.85m 전후이다. 이 수로는 청동기 시대 논과 동시에 개설된 것으로, 이후 일시적으로 폐기(廢棄) 또는 방기(放棄)되면서 여러 차례 개수(改修)되어 삼국 시대의 일정 시기까지 계속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생활 유적으로, 생활 공간인 취락과 생산 공간인 논이 동시에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특히 집자리의 형태는 물론 벽 도랑이나 배수구,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등 집자리의 부대 시설이 완전하게 잘 남아 있고, 판재를 이용한 수직 벽이 확인되어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청동기~조선 시대의 논 발견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유적에서 완전한 구조를 갖춘 논이 확인되어 벼농사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구릉 위의 주거-골짜기의 논’이라는 토지 이용이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되었음을 확인하였고, 논의 조성이나 관개 시설(灌漑施設) 등을 통해 당시의 사회나 농업 기술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지역에서 층위를 달리하면서 청동기 시대-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논이 조사됨으로써, 시기별로 논의 형태와 토지 이용 방법, 관개 체계 등을 상호 비교할 수 있어 농업사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지금까지 일본에서 조사되었던 논과 같은 소구획 논이 확인되어 일본의 초기 수전(水田) 경작의 기원이 한반도 남부 지역이었음을 밝히는 동시에, 일본 소구획 논의 동남아시아 기원설이나 수도작(水稻作)의 창장강(長江)유역 직접 도래설을 부정할 수 있는 적극적인 증거가 확보되었다.

조사정보

유형 조사 시기 보고서명 발간 연도 조사 기관
발굴조사 1998년 4월 23일~1999년 5월 15일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 2015 경남대학교박물관, 부산대학교박물관
시굴조사 1997년 11월 25일~1997년 12월 24일 을산 무거동 옥현 유적 2015 경남대학교박물관, 부산대학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