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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표제어=대리 하방촌 고인돌군[長興 大里下芳村支石墓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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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2 판


대리 하방촌 고인돌군[長興 大里下芳村支石墓群]
기본 정보
동의어 장흥 대리 하방촌 고인돌군, 장흥 대리 하방촌 지석묘군, 외검·하방촌 지석묘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대한민국
소재지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대리 691-3 일원
관련 정보
성격 고인돌
키워드 고인돌, 민무늬토기, 곱은옥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19
집필자 김진영



설명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대리 691-3 일원에 위치한다. 탐진댐 건설 공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수몰 지역 내에 포함되어 2000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모두 4개 군으로 나누어지며, 총 39기의 고인돌을 확인하였다. 고인돌은 탐진강의 지류인 수덕천과 옴천천에 근접해 위치하는데, 내접산을 중심으로 지름 1㎞ 내에 분포한다.

가군은 내접산과 수인산의 경계 지점이며 하방촌에서 오복리로 넘어가는 장고개 정상부에 1기가 있다. 덮개돌(上石은 평면 삼각형으로, 길이 3.46m, 너비 3.12m, 두께 1.24m, 무게는 17톤 정도이다. 받침돌(支石) 3매가 확인되었고, 편 등이다.

나군은 가군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산사면부에 등고선으로 분포한다. 모두 9기의 덮개돌이 있었으나 하부 시설(下部施設)이 확인된 것은 3기이며 덮개돌 없는 무덤방 1기가 조사되었다. 덮개돌은 장방형인 것이 많고, 무게는 0.1~9톤에 이른다. 2호 덮개돌은 길이 3.4m, 너비 2.1m, 두께 0.92m로 가장 크다. 묘역 시설(墓域施設)구획석(區劃石)을 돌린 것이 확인되었으나 일부만 남아 있다. 무덤방은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축조한 것이 많으며, 무덤방 바닥은 전면에 잔돌을 깐 것과 생토면을 이용한 것이 있다. 출토 유물은 없다.

다군은 나군에서 동남쪽으로 50m 정도 거리의 산사면부에 등고선으로 분포한다. 덮개돌 7기가 있었으나 하부 시설이 확인된 것 3기, 덮개돌 없는 무덤방 3기가 조사되었다. 덮개돌은 1~19톤 정도의 무게이고, 중앙부에 대형 덮개돌이 위치한다. 가장 큰 6호의 덮개돌은 길이 4.48m, 너비 3.32m, 두께 0.89m이다. 묘역 시설은 대부분 훼손되었고, 일부 적석積石한 것이 있다. 무덤방은 깬돌을 쌓아 축조한 돌덧널형(石槨形)이 많고, 무덤방 바닥은 전면에 잔돌을 깐 것과, 판돌(板石)과 깬돌을 혼용하여 깐 것으로 구분된다. 출토 유물은 다-8호에서 천하석제(天河) 곱은옥(曲玉) 1점이 있다.

라군은 수덕천을 경계로 가·나·다군과 마주하며, 150m 정도 떨어져 수덕천과 옴천천이 합류하여 남동 방향으로 흐른다. 고인돌은 하상 퇴적이 이루어진 선상지에 하천의 방향과 나란하게 열상(列狀)으로 분포한다. 덮개돌 4기와 덮개돌 없는 무덤방 17기가 확인되었다.

덮개돌은 사다리꼴(梯形)이 많고, 무게는 0.7~9.8톤 정도이다. 10호의 덮개돌은 길이 5.4m 너비 2.16m, 두께 0.64m이고, 무게는 9.8톤으로 평면 장타원형에 가까우며 ‘배바우’로 불리운다. 묘역 시설은 대부분 없으나, 일부 판돌을 깔아 축조한 것이 있다. 무덤방은 지하에 무덤 구덩이(墓壙)를 파고 깬돌을 쌓아 축조한 것, 깬돌을 1단으로 축조한 것, 돌널무덤(石棺墓)과 유사한 것, 무덤방을 축조하지 않고 깬돌을 둘러 축조한 것(圍石形)으로 구분되는데 지하에 무덤 구덩이를 파고 깬돌을 쌓아 축조한 것이 가장 많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등이다. 전체적인 유적의 규모나 유구의 수에 비해 유물의 출토양이 적은 편으로 이는 옴천천 중류에 입지한 오복동 고인돌군의 결과와는 상이한 양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