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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고연리 유적(黃州 高淵里遺蹟) | |||
| 이칭별칭=황주 고연리 유적 | | 이칭별칭=황주 고연리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북한 | |||
| 소재지=황해북도 황주군 고연리 용당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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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장호수 | | 집필자=장호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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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1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황주 고연리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북한 |
| 소재지 | 황해북도 황주군 고연리 용당마을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무시설식 화덕 자리, 고인돌, 움무덤, 벽돌무덤, 팽이 토기, 턱자귀, 반달돌칼, 돌대팻날, 구덩이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장호수 |
설명
황해북도 황주군 고연리 용당마을에 위치한다. 1978년에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용당마을 남쪽에는 대동강의 지류인 매상천이 흐르고, 그 남쪽 백상골의 저평한 구릉에 유적이 입지한다. 이 일대에 밭갈이 등과 유수로 인해 드러난 팽이 토기(角形土器) 편, 돌도끼, 턱자귀(有段石斧), 반달 돌칼 등이 수습되어, 30만㎡에 대해 시굴 조사를 실시하여 40여 기의 집자리를 확인하고,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 14기를 정리하였다. 고연리 일대에는 집자리를 비롯하여 고인돌, 성터(城址), 움무덤(土壙墓), 벽돌무덤(塼築墳) 등 여러 시기의 유적들이 있다.
집자리는 중복 관계와 유물 갖춤새를 종합하여 3시기로 구분된다. 중복 관계는 아래층에서부터 3→1→2호, 8→7→6호순이며 중복되지 않은 집자리는 8기가 있다. 3호는 길이 6.5m, 너비 4.6m, 깊이 0.2m이고, 8호는 길이 8.6m, 너비 4.6m, 깊이 0.4m로 평면 장방형이며 남북으로 길게 놓였다. 모두 내부에는 모서리에 기둥 구멍이 배치되고 벽은 진흙을 바르고 구웠다. 또한 8호에서는 북쪽으로 치우쳐 구덩이가 있는데 그 속에 숫돌(砥石)과 돌돈(石貨)이 있고 그 주위에 석기를 갈 때 생긴 돌가루(石粉)가 1㎝ 두께로 덮여 있다. 유물은 조롱박형 단지, 겹아가리(二重口緣)에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가 새겨진 팽이 토기와 돌도끼, 반달 돌칼 4점, 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숫돌, 가락바퀴, 검몸에 피 홈(血溝)이 있는 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간 돌살촉, 별도끼(星形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가운데 층의 집자리인 1호는 길이 11m, 너비 5.5m, 깊이 0.5m, 7호는 길이 9.5m, 너비 5m, 깊이 0.65m로 규모가 큰 편이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이며, 기둥 구멍은 장축으로 3열이 있고 윗벽 가장자리에는 가는 기둥 구멍이 촘촘하게 서 있다. 유물은 턱자귀, 돌대팻날, 반달 돌칼 10점씩이 공통으로 출토되고 전형, 변형의 팽이 토기는 출토되나 조롱박형 단지는 없다. 또한 간 돌검 1점과 돌창(石槍) 2점이 한 조를 이루어 나오거나 동남벽 모서리 부근에 세운 돌돈이 나온 것은 중간층 집자리에서만 볼 수 있다. 겹놓이지 않은 다른 집자리들은 가운데 주춧돌(礎石)이 확인되는 10호를 제외하고는 기둥 구멍의 배치, 유물 갖춤새에서 가운데 층 시기에 해당된다.
윗층의 집자리인 2호, 6호 집자리는 삭평이 심해 규모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6호 내부에서 구덩이를 얕게 파고 그 둘레를 흙으로 둘린 화덕과 중앙에 기둥 구멍이 1열 3개가 확인된다. 토기의 기형에서는 다른 층과 차이를 보인다. 즉 토기 아랫 부분은 전형적인 팽이 토기와 같으나 아가리에 장식이 없는 좁은띠를 붙이고 있어 화분 모양 토기(花盆形土器)의 것과 유사하다. 고연리 유적은 남양리 유적과 함께 층서적으로 팽이 토기 집자리의 상대 편년을 고찰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