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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이마야마 유적(福岡 今山遺跡) | |||
| 이칭별칭=후쿠오카 이마야마 유적, 복강 금산 유적 | | 이칭별칭=후쿠오카 이마야마 유적, 복강 금산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일본 | |||
| 소재지=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 후쿠오카시(福岡市) 니시구(西区) 요코하마 2정목(横浜2丁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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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이창희 | | 집필자=이창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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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3 판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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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어 | 후쿠오카 이마야마 유적, 복강 금산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일본 |
| 소재지 |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 후쿠오카시(福岡市) 니시구(西区) 요코하마 2정목(横浜2丁目)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공방 |
| 키워드 | 돌도끼, 조갯날 돌도끼, 야요이 토기, 돌도끼 전문 생산유적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창희 |
설명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 후쿠오카시(福岡市) 니시구(西区) 요코하마 2정목(横浜2丁目)에 위치한다. 1924년 나카야마 헤이지로(中山平次郎)의 보고로 알려졌다. 돌도끼의 전문 생산유적으로 유명하며, 이마야마의 현무암을 사용해 조갯날 돌도끼(太形合刃石斧)를 제작한 유적이다. 원재료를 채석장이 가까운 산의 정상이나 중턱에서 가공한 뒤 산기슭에서 최종 가공하여 완제품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976년 조사에서 돌도끼의 제작 시기는 유우스식 토기(夜臼式土器), 이타즈케Ⅰ·Ⅱ식 토기(板付Ⅰ·Ⅱ式土器)를 비롯해 스구식 토기(須玖式土器)가 함께 출토되어 조사 당시 야요이 시대 전기에서 중기로 추정하였다. 전기와 중기의 돌도끼를 비교했을 때 형태, 크기, 제작기법 상에서 큰 차이는 없다. 완형은 길이 20㎝ 전후, 너비 7~8㎝, 두께 4~5㎝, 중량 약 1.5㎏의 대형이다. 이러한 돌도끼는 한반도 남부의 간석기와 유사하지만, 단면 형태가 비교적 둥근 편이며 길이도 긴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른 유적의 야요이 시대 조갯날 돌도끼가 경사암(輕砂巖) 재질이 많고, 폭이 넓으며 두께가 얇은데 비해, 이마야마 유적의 돌도끼는 형태나 재질면에서 견고하고 두꺼워서 구별하기 쉽다. 전기의 이마야마 돌도끼는 이마야마 집단 내부나 그 주변에 한정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북부 규슈의 같은 시기의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사례는 없다. 그러나 중기 이후가 되면 이토시마(糸島), 후쿠오카(福岡), 가호(嘉穂), 사가(佐賀), 아사쿠라(朝倉), 지쿠고(筑後) 등에서 출토되는 돌도끼의 약 90%가 이마야마 돌도끼에 해당한다. 즉, 이마야마의 집단은 각지에 돌도끼 공급을 목적으로 한 전문 생산 집단으로 성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제 2지점의 유물 포함층에서 전형적인 북부 규슈의 야요이 토기가 전기부터 중기까지 출토되고 있다. 중심 기종이 옹과 호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마야마의 주민들이 계속 정주하면서 타 지역과 교역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