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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2 판


아마 유적(高槻 安満遺跡)
기본 정보
시대 청동기 시대
국가 일본
소재지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다카쓰키시(高槻市) 핫초나와테정(八丁畷町)
관련 정보
성격 취락
키워드 도랑무덤, 환호, 취락
사전 정보
수록 사전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집필 연도 2022
집필자 김규운



설명

국가 사적.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다카쓰키시(高槻市) 핫초나와테정(八丁畷町)에 위치한다. 미시마(三島)평야의 동쪽 끝부분에 위치하며, 다카츠키시 동부에 흐르는 히오강(桧尾川)에 의해 형성된 선상지에 입지하는 야요이 시대의 거점적인 환호 취락이다.

1928년 교토대학(京都大学) 대학원 농학 연구과 부속 농장 건설 공사 중 발견되어 조사하였다. 출토 토기가 야요이 시대 전기 토기와 유사하여 야요이 문화가 북부 규슈 지역에서 긴키 지역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지적한 유적이다. 이후 아마 유적 주변으로 덴진야마 유적(天神山遺跡), 오쿠텐진야마 유적(奥天神山遺跡), 지간지야마 유적(慈願寺山遺跡), 나리아이 유적(成合遺跡) 등 소규모 취락 유적이 조사되었다. 이를 통해 야요이 시대가 되면 거점 취락과 소규모 취락이 수리(水利)나 관개 등 공동체적 결속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교토대학의 조사 이후 1967년부터 지금까지 50회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1967년 택지 개발을 계기로 농장 북서부 지역의 조사가 실시되면서, 취락 유구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방형 도랑무덤(周溝墓)이 서일본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1980년 한큐고가공사(阪急高架工事)로 야요이 시대 전기의 용수로와 보(井堰)가 조사되었다. 이를 통해 아마 유적의 거주역·묘역·생산역이 구체적으로 파악되었다. 환호는 먼저 전기 전반에 축조되고 바깥쪽 환호는 전기 후반에 축조되었다. 전기 환호는 홍수에 의해서 매몰되었지만 중기에는 바깥쪽 환호가 다시 구축되면서 취락의 주거역이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2008~2010년까지 농장 내의 조사 결과, 복수의 환호를 발견한 성과 외에도 야요이 시대 전기 마을의 경관을 추정할 만한 중요 유구의 분포 범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교토대학 농장의 약 6.4㏊가 사적으로 추가 지정되었다. 이후 사적 보존과 활용·공원 정비 공사가 진행되면서 2019년 유적 공원의 서쪽 일부, 2021년에는 전면 개장될 예정이다.

아마 유적은 미시마 지역에서 처음으로 논농사가 확인된 유적으로, 야요이 시대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취락이 있었다. 거주 구역 주변은 환호로 둘러싸여 있다. 남쪽으로는 용수로를 갖춘 논이 펼쳐져 있고, 동쪽과 서쪽에는 100기 이상의 방형 도랑무덤이 묘역을 형성하고 있다. 유적의 근처는 습지대로 히오강의 홍수나 범람의 위협으로 한때 산기슭의 시바타니 유적(芝谷阪急) 등의 고지성(高地性) 취락으로 옮겨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에서 취락은 시기별로 변화가 확인되었다. 전기의 취락은 거주 지역이 유적 중앙부 남쪽의 고지대에 위치하며, 동서 길이 150m, 남북 길이 140m의 부정형인 환호에 둘러싸인 부분이 중심이다. 논은 거주 지역 남쪽의 낮은 구역에 있는 동서 약 400m, 남북 약 150m의 범위로 확장된다. 묘역은 거주 지역에서 동쪽으로 300~500m 정도 떨어져 위치한다. 중기 전반에는 거주 지역, 생산 지역, 묘역의 규모가 커진다. 중기 후반에는 거주 지역·생산 지역은 이전 유구와 구분되며, 묘역은 북부에 새롭게 조영된다. 이는 그 동안 하나의 집단이 이 시기에 2개의 집단으로 분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후기에는 거주 지역의 규모가 축소되는데, 북쪽 고지대의 거주 지역은 소멸한다. 생산 지역은 거주 구역 남쪽 저지대에 위치하며, 묘역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