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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효자동3가 유적(全州 孝子洞3街遺蹟) | |||
| 이칭별칭=전주 효자동3가 유적 | | 이칭별칭=전주 효자동3가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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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이종철 | | 집필자=이종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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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1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전주 효자동3가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3가 1614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송국리식 집자리,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골아가리 토기, 병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가락바퀴, 쇠도끼, 둥근 덧띠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종철 |
설명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3가 1614 일원에 위치한다. 전주 신시가지 조성의 일환으로 2005~2006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이 분포하는 구릉 지대는 황방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자락의 말단부로서 가지능선이 발달되어 있다. 조사 구역은 기전중학교-문학초등학교-마전교회 일대에 조성된 주택 단지에 해당하며 Ⅰ~Ⅳ구역으로 구분된다. 조사 결과, Ⅰ구역에서는 초기 철기 시대 도랑 2기, Ⅱ구역에서는 초기 철기 시대 도랑 4기, 구덩이 3기, Ⅲ구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11기·구덩이 5기·돌널무덤 2기·돌덧널무덤 3기·돌뚜껑움무덤 1기 및 초기 철기 시대 도랑 3기·구덩이 1기, Ⅳ구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1기 및 초기 철기 시대 구덩 3기, 움무덤 1기가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는 12기로, 11기는 송국리식이고 1기는 장방형이다. 송국리식 집자리는 평면 형태가 모두 원형이며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2개의 중심 기둥이 설치되는 형식이다. 다만 2기(1·2호)는 타원형 구덩이 밖 장축 양 끝에 별도로 2개의 중심 기둥이 있고, 1기(8호)는 바닥 중앙에 4주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23㎡ 내외의 면적으로서 다른 주거들에 비해 현저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11기의 주거 면적은 11.7~29㎡ 사이에 분포하기 때문에 중·소형에 해당한다. 집자리들 일부에서는 점토로 바닥을 다지거나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을 뿐 특기할 만한 시설은 없다. 11기의 집자리는 지점별로 군집성을 가진다. 1~2호는 구릉 정상부에 입지하지만 최정상부를 빈 공간(空地)으로 두었고, 3~8호는 가지능선 정상부에 밀집하며 9~11호는 지점을 달리하는 독립된 구릉의 경사면에 조성되었다. 공간 분포상 1~8호는 서로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 별도의 지점에 축조된 장방형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 능선에 입지하며 면적은 29.2㎡이다.
무덤은 돌널무덤·돌덧널무덤·돌뚜껑움무덤으로 돌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은 구릉 말단부 경사면에 밀집하여 분포한다. 장축은 모두 등고선과 나란하게 축조되었고, 중첩 없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였다. 돌널무덤은 4~5m에 이르는 무덤 구덩이를 2단으로 굴착하고 중앙에 돌널을 설치한 후, 덮개돌을 덮은 뒤 다량의 깬돌을 쌓는 방식이다. 바닥 일부에는 판돌을 깨서 깔았다. 돌덧널무덤은 3기 중 1기에서만 뚜껑돌(蓋石)이 확인되었을 뿐 덮개돌(上石)의 존재는 알 수 없다. 바닥은 생토면을 이용하거나 납작한 돌을 깔았다. 돌뚜껑움무덤은 지점을 달리하는 구릉의 능선에 독립적으로 조성되었다.
구덩이는 지점을 달리하는 두 곳에서 각각 2기와 3기가 분포한다. 한 곳은 무덤들과 인접하여 밀집 조성되었고, 다른 한 곳은 별도의 가지능선 정상부에 약 10m 거리를 유지한 채로 존재한다. 평면 형태는 대부분 방형이나 장방형이다.
초기 철기 시대는 도랑, 구덩, 움무덤이 존재한다. 생활 유구인 구덩과 도랑 외에 집자리가 조사되지 않은 점은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 주거 영역의 입지나 위치가 다른 원거리 지점에 존재할 가능성을 짐작게 한다.
도랑은 공통적으로 경사면에 조성되며 등고선과 직교한다. Ⅰ구역에서는 2기가 서로 나란하게 분포하는데, 길이는 대략 10~20m이고, 너비는 2~3m 정도이다. 한 기에서는 다량의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Ⅱ구역의 4기는 길이가 대략 10~40m 사이, 너비가 4~6m 정도이다. 공통적으로 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으며 숯, 불탄 흙 등도 확인됨에 따라 보고자는 부뚜막이나 토기 가마의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Ⅲ구역의 3기는 길이가 대략 5~20m이고, 너비가 1~1.5m 내외이다. 도랑의 단면 형태는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는 U자와 V자를 이룬다.
구덩이는 대부분 구릉 정상부에 조성되었으며 지름은 2~3m 내외이다. Ⅱ구역에는 방형, 원형, 부정형 3기가 있으며 Ⅲ구역에서는 무덤들에 인접하여 원형 1기, Ⅳ구역에서는 구릉 정상부에 방형, 원형, 부정형 3기가 분포한다. 이들에서는 공통적으로 토기 편, 석기 편 등이 출토된다.
움무덤은 Ⅳ구역 구릉의 경사면에 축조되었으며, 등고선과 나란하다. 길이 1.88m, 너비 0.57m, 깊이 0.47m이며, 바닥에는 민무늬 토기 편을 깔았다. 출토된 유물은 없다.
송국리식 집자리에서는 송국리식 토기, 붉은 간 토기, 바리 토기, 삼각 돌칼, 돌살촉, 숫돌, 갈돌 등이 출토되어 송국리 취락의 일반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다만 곧은 목 항아리(直立口緣壺)가 공반하고, 붉은 간 토기로 사용되던 말각평저(末角平底)의 병 모양 토기(甁形土器)가 단순히 민무늬 토기로 존재하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편, 그물추, 숫돌, 공이돌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에서는 출토 유물이 빈약한 편으로 돌살촉, 돌도끼 편 등이 무덤방 밖 돌무지(積石部)에서 출토되었다. 구덩에서는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편,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초기 철기 시대의 도랑에서는 둥근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 조합식의 소뿔 모양 손잡이편이 출토되었다. 이외에 소형 토기, 돌칼, 가락바퀴, 돌살촉 등이 있다. 특히 Ⅱ구역 4호에서는 주조된 쇠도끼와 검은 간 토기가 출토되어 주목을 끈다. 구덩이에서는 민무늬 토기와 석기 편 등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둥근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 조합식의 소뿔 모양 손잡이 편이 대표적이다.
유적에서 검출된 방사성 탄소 연대에 따르면, 송국리식 집자리는 기원전 8~6세기(2시그마) 혹은 기원전 7~6세기 중반(1시그마)에 해당되고, 1기의 구덩이는 기원전 8~5세기 전반(2시그마) 혹은 기원전 7~6세기 중반(1시그마)으로 나타나 집자리와 구덩이 모두 기원전 7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Ⅱ구역의 초기 철기 시대 도랑은 기원전 4~3세기(2시그마)에 해당하고 기원전 3세기(1시그마)에 집중되어 기원전 3세기 전후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