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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화천리 산249-3 외 유적(慶州 花川里山249-3外遺蹟) | |||
| 이칭별칭=경주 화천리 산249-3 외 유적 | | 이칭별칭=경주 화천리 산249-3 외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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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윤형규, 신영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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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40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경주 화천리 산249-3 외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 산249-3, 95-16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붉은 간 토기, 바리 토기, 돌살촉, 반달 돌칼, 도랑, 둘레 도랑, 항아리 모양 토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윤형규, 신영애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 산249-3, 95-16 일원에 위치한다. 국도 대체 우회 도로 건설에 앞서 2009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화천리 유적)이 조사하여 집자리 1기를 확인하였다. 이후 양성자 가속기 개발 사업(화천리 산249-3)으로 2009~2010년 성림문화재연구원(모량리 유적Ⅰ)과 영남문화재연구원(화천리 산251-1 유적Ⅰ)이 A·B구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두 유적은 약 660m 떨어져 위치한다.
화천리 유적은 서쪽으로 해발 200m 내외의 구릉이 에워싸며, 그 중앙 저지대의 충적지에 입지한다. 집자리의 형태는 후대 경작으로 훼손되어 확인하기 어렵다. 길이 3.38m, 너비 3.58m, 깊이 0.12m이다. 내부 시설은 구덩식(竪穴式) 화덕 자리 1개가 확인되었으며, 바닥에는 부분적으로 목탄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붉은 간 토기, 바리 토기(鉢形土器), 독(甕), 돌살촉, 미완성 돌칼, 돌도끼, 숫돌(砥石), 반달 돌칼, 미완성 석기 등이 확인되었다.
화천리 산249-3 유적은 A구역(모량리 유적Ⅰ)에서 집자리 41기, 구덩이 1기, 초기 철기 집자리 3기 등이 확인되었고, B구역(화천리 산251-1유적)에서 집자리 59기, 구덩이 2기, 도랑(溝) 1기,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 10기, 구덩이 31기, 둘레 도랑(周溝) 4기, 도랑 19기, 자연 도랑(自然溝) 6기, 폐기 구덩이(廢棄場) 3기, 제단 시설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단석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어내린 구릉 말단부와 구릉 사이 곡부에 입지한다.
A구역 집자리는 구릉 능선과 사면에 열을 이루어 분포하고, 중복되기도 한다. 형태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다양하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壁溝), 선반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기둥 구멍은 정형성이 없고, 화덕 자리는 구덩식으로 중앙이나 한쪽으로 치우쳐 1개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8기에서 확인되며 벽 기초 시설 홈이나 배수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반 시설은 벽면의 편평한 면에 저장 용기나 도구를 올려놓았던 곳으로 긴 벽을 2단으로 굴착하여 사용하였고 3기에서 확인된다.
출토 유물은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 간 토기,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 겹아가리 짧은 빗금 골아가리 토기(二重口緣短斜線口脣刻目文土器),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혹무늬 토기(橫線文土器), 반달 돌칼, 돌창(石槍) 등이 확인되었다.
B구역 집자리는 대부분 방형, 장방형이며, 5호가 면적 70.1㎡로 가장 크며, 면적 20㎡를 기준으로 소형(8기)과 중형(5기)으로 구분 가능하다. 중앙의 기둥 구멍은 대체로 4·6·8주식(柱式)의 구조를 보이며, 내부에는 정연하지 못한 보조 기둥도 다수 남아 있다. 화덕 자리는 대부분 중앙 또는 한쪽 벽에 치우쳐 1개를 설치하였고, 1·2·3·5·33호는 중앙에 2~3개가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 17기, 평지식(平地式) 15기가 확인되었다. 벽 도랑은 ‘一’,‘ᄀ’, ‘ᄃ’자 모양으로 다양하며, 1·6·10·16·17·19·21·26·40·47·50·54호는 내부에서 유물이 확인되어 사용 당시에 밀폐되지 않은 배수구로 추정된다. 8·41호는 벽면의 한쪽 모서리에 덧대어 벽 도랑과 연결하여 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를 설치하였다. 또한 10·16·17·52호는 벽면을 따라 다수의 벽 기둥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확인된다. 바닥은 5·10·12·15·17·41호와 같이 불 다짐 처리한 것도 있으나 대부분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바리 토기, 겹아가리 짧은 빗금 무늬토기, 골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 가로 방향의 혹무늬 토기가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반달 돌칼, 양날 돌도끼(兩刃石斧), 홈자귀(有溝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화천리 산249-3 유적의 A구역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90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00년)~2590±50 BP(보정 연대 기원전 785년)로 확인되었으며, B구역은 2호 집자리 295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1180년), 3호 집자리 261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0년)의 값이 도출되었다. 그 밖에 초기 철기 시대 27호 구덩이와 1호 둘레 도랑은 238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450년)로 동일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집자리들은 구릉지를 따라 대체로 환상형(環狀形)의 배치를 보이며, 그 밖에 당시 각종 시설물들이 집자리 주변으로 계획·규칙성 있게 배치되어 일정 기간에 걸쳐 마을이 보다 안정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대규모 마을이 체계화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유적은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경주 지역 최대의 복합 유적이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당시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이용됨에 따라 청동기 시대 마을의 입지 및 변천 과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요 유적 중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집자리에서 출토된 다양한 암석으로 구성된 석기 유물의 조합을 통해 당시 생업 환경을 구체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으며, 또한 청동기 시대 마을이 사라진 이후에는 다시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를 비롯해 둘레 도랑과 같은 각종 의례 시설물이 조영됨에 따라 당시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문화인들의 삶의 흔적 또한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