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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중동·정문동 유적(全州 中洞·正門洞遺蹟) | |||
| 이칭별칭=전주 중동·정문동 유적 | | 이칭별칭=전주 중동·정문동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 위치=대한민국 | |||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중동 831-29·34 일원 | |||
| 성격=생활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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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 집필연도=2019 | | 집필연도=2019 | ||
| 집필자=송종열 | | 집필자=송종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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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9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전주 중동·정문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중동 831-29·34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생활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 민무늬 토기, 토우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송종열 |
설명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중동 831-29·34 일원에 위치한다. 전북 혁신도시 개발 사업에 일환으로 2010~2012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은 낮은 구릉과 곡간부에 위치하는데 곡간부를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정문동, 서쪽에는 중동A 유적이 위치한다. 두 유적은 동일 유적으로 판단되며 주변으로는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하는데, 특히 서쪽과 북쪽으로 가시거리 내에 완주 금평리(신풍), 반교리 갈동, 갈산리 덕동, 전주 장동 등 대규모 무덤군이 군집한다.
유구는 구릉과 곡간부에 고루 분포하는데 구릉에는 주로 집자리와 구덩이가, 곡간부에는 도랑(溝)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1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방형이며 길이 5.5m, 너비 5.4m 이다.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고 바닥에서 목탄층이 확인된다. 구덩이는 19기가 조사되었다. 형태는 원형과 방형도 보이지만 대부분 부정형이며 길이는 1~7.5m로 다양하다. 구덩이의 기능도 다양한데 크기와 내부 퇴적토, 출토 유물 등으로 볼 때 집자리 또는 폐기장(廢棄場), 화덕 자리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랑은 28기가 확인되어 초기 철기 시대 유구 중 가장 많이 확인되었다. 구릉 사면부에서 대부분이 확인되고, 정문동 지점은 곡간부에서 6기가 조사되었다. 도랑의 형태는 한 방향으로 길게 뻗은 형태도 보이지만 대부분 방향성이 없는 부정형이다. 뻗는 방향은 2기를 제외하면 모두 등고선과 직교한다. 단면은 완만한 ‘U’자와 ‘V’자 모양이 확인되며, 규모가 큰 도랑 중 내부 퇴적토 하단에서 사질토나 회색 점토가 보이고 있어 물이 흘렀을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덧띠 토기(粘土帶土器), 굽다리 토기(豆形土器), 조합식 쇠뿔 손잡이가 달린 긴 목 항아리, 토제품(土製品), 민무늬 토기 편 등이 다량 확인되었다. 특히 토제품은 원형의 두꺼운 점토에 눈과 입을 표현하여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한 토제품, 여성의 신체를 표현한 토우, 그밖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원형의 토제품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290±40 BP(정문동 나-1호 도랑), 2400±40 BP(중동A 가-4호 구덩이), 2420±40 BP(중동A 나-1호 구덩이), 2140±40 BP(중동A 나-5호 구덩이) 등으로 확인되었다.
중동 일대는 100여 기 이상의 초기 철기 시대 무덤이 다수 확인되었으나, 생활 유적이 거의 확인되지 않아 초기 철기 시대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에 한계가 많았다. 그러나 중동·정문동 유적은 집자리, 구덩이와 도랑 등이 확인된 초기 철기 시대 생활 유적으로서 당시의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