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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원신흥동 유적(大田 元新興洞遺蹟) | |||
| 이칭별칭=대전 원신흥동 유적 | | 이칭별칭=대전 원신흥동 유적 | ||
| 시대=청동기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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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자=오규진 | | 집필자=오규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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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8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대전 원신흥동 유적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원신흥동 47 일대 |
| 관련 정보 | |
| 성격 | 복합유적 |
| 키워드 | 집자리, 구덩이, 도랑, 가락동식 집자리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오규진 |
설명
대전광역시 유성구 원신흥동 47 일대에 위치한다. 도안 신도시 동서 도로 건설 공사에 따라 2010년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생활 유적이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의 서쪽으로는 도안동 유물 산포지가 인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갑천(甲川)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다. 조사 지역은 갑천변 서쪽에 형성된 넓은 충적대지로 논과 밭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청동기 시대 유구는 집자리 4기, 구덩이 2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장방형, 세장방형, 방형 등 다양한 평면 형태이며 화덕 자리, 기둥 구멍, 주춧돌(礎石) 등의 내부 시설 또한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다.
1호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장방으로 잔존 길이 19.46m, 너비 8.81m, 잔존 깊이 0.12m로 화재로 폐기된 상태이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로는 돌 깐 돌두름식 화덕 자리(石床圍石式爐址) 2기, 기둥 및 저장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바닥에 넓고 얇은 판돌板石을 깔고 작은 방형이나 장방형의 석재를 돌려 조성하였다. 기둥은 화덕 자리를 중심으로 긴 벽면을 따라 2열로 6기씩 배치되어 있다. 기둥 내부의 평면 형태가 다른 집자리와 달리 방형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중 기둥 1기에서만 주춧돌이 확인되었다.
3호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방형에 가까우며, 남북 길이 6.3m, 동서 길이 6.7m이다. 내부 시설로 돌 깐 돌두름식 화덕 자리(石床圍石式爐址)와 기둥들이 확인되었다.
반면에 2호 집자리는 세장방형으로 길이 10.62m, 너비 2.94m이다. 내부 시설로는 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 주춧돌 및 작은 기둥 구멍들이 확인되었다. 4호 집자리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길이 6.12m, 너비 3.24m, 깊이 0.22m이다. 다른 집자리들과 달리 구덩식 화덕 자리(竪穴式爐址) 1기가 설치되었으며, 불규칙적인 작은 기둥 구멍들이 확인되었다.
원신흥동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에서는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의 형태가 확인되었다. 가락동식 집자리 중에서도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가 1·3호 집자리에서 확인되었다. 둘째, 돋을띠 무늬 토기(突帶文土器)가 출토되었다. 마지막으로 대다수의 대전 지역에서 확인된 가락동식 집자리가 입지한 구릉성 산지가 아닌 자연 제방 주변 충적지(沖積地)에 입지한다는 점이다.
집자리의 방사성 탄소 연대값은 1호 집자리가 3070±50 BP, 3010±50 BP로 보정 연대는 기원전 1410년 전에서 기원전 1050년 정도이다. 이는 대전 지역 청동기 시대 집자리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원신흥동 유적과 연접한 원신흥동 신흥들 유적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21기, 구덩이 6기, 도랑 6기가 조사되었는데, 일부 집자리에서 돌 깐 돌 두름식 화덕 자리와 덧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가 확인되었다. 이를 종합해볼 때 갑천 서쪽에 자리한 충적지 일대에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취락이 넓게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