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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정보 | {{유적정보 | ||
| 한글표제어=용당동 고인돌군[順天 龍堂洞支石墓群] | |||
| 이칭별칭=순천 용당동 고인돌군, 순천 용당동 지석묘군, 순천 죽림 고인돌군 | | 이칭별칭=순천 용당동 고인돌군, 순천 용당동 지석묘군, 순천 죽림 고인돌군 | ||
| 시대=청동기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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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전라남도 순천시 용당동 235-1 일원 | |||
| 성격=고인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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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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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화) 05:37 판
| 기본 정보 | |
|---|---|
| 동의어 | 순천 용당동 고인돌군, 순천 용당동 지석묘군, 순천 죽림 고인돌군 |
| 시대 | 청동기 시대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용당동 235-1 일원 |
| 관련 정보 | |
| 성격 | 고인돌 |
| 키워드 | 고인돌, 바둑판식 고인돌 |
| 사전 정보 | |
| 수록 사전 | 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 집필 연도 | 2019 |
| 집필자 | 이동희(인제대) |
설명
전라남도 순천시 용당동 235-1 일원에 위치한다. 도로 확·포장 공사 구간에 포함된 5기의 고인돌을 1995년에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은 밭과 논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는데, 지형적으로 봉화산의 서북쪽 줄기의 하단부에 해당하는 좁다란 계곡에 위치한 용당동에는 훼손된 고인돌까지 포함하면 모두 7개군 50여 기가 분포하고 있었다.
덮개돌(上石)의 무게는 2~17톤이다. 5기 가운데 2기에서만 무덤방(墓室)이 확인되었고, 3기의 덮개돌은 이미 이동된 상태였다. 무덤방이 확인된 2기의 고인돌 가운데 1호만 돌덧널형(石槨形)의 무덤방이 노출되었다. 1호 덮개돌은 평면 장방형으로 길이 3.46m, 너비 3.06m, 두께 1.54m이며 받침돌(支石) 5매가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전형적인 바둑판식(碁盤式)이다. 받침돌 중에는 배 모양(舟形) 받침돌도 있으며, 무덤방 주위로는 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이 마련되어 있다. 무덤방은 길이 1.54m, 너비 0.36~0.54m, 깊이 0.27m이다. 돌덧널의 벽석은 크고 작은 깬돌(割石)들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바닥은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다. 한편, 5호의 덮개돌은 길이 1.28~2.46m, 너비 0.41~1.51m, 두께 2.77m이며, 7매의 대형 받침돌들이 정면된 직사면체의 덮개돌을 지탱하는 형상이다. 덮개돌은 너비보다 높이가 더 길어서 선돌(立石)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고인돌은 그 형태적인 특징 외에도 무덤방이 확인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무덤으로서의 기능보다는 묘표석(墓標石)이나 집단의 공공 집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祭壇)으로서의 기능이 엿보인다. 고인돌과 관련된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